실습 마지막 날, 병실을 하나하나 들러 그새 정든 환자들과 인사를 하며 806호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저 오늘 마지막이에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그러자 그 까칠하던 할아버지가 내게 음료수를 하나 건네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내 덕분에 할머니의 소원 하나를 들어줬다면서 고맙다고 했다. 어리둥절한 내 눈에 할머니 손가락의 가느다란 금반지가 들어왔다. 젊은 날 무심하기만 했던 나를 보며 살아온 할멈이야, 가난 때문에 반지 하나 껴보지 못했어, 시집와서는 늘 고생만 했지, 이제야 좀 나아진 형편에 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렇게 정신을 놓아버린 거야, 이야기 하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살아서 꼭 내손으로 반지 하나는 해주고 가야지 싶었는데, 무턱대고 사러가니 반지 호수를 알아오라 안카나. 그래가 우예 손가락 둘레 잽니꺼 물었디만, 실로 하면 된다카드라.”
할아버지는 어두운 눈으로, 투박한 손으로 할머니의 손가락을 실로 몇 번이나 감았을 것이다. 머리가 멍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코끝이 시큰거리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랜 간병에 지쳐 성질만 부리는 할아버지라 여겼던 내가 부끄러웠다.
다이아몬드도 진주도 아니었지만 그보다 훨씬 빛나던 금반지. 할아버지의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 프러포즈였을 그 실반지가 생각난다.
손예슬(21·대학생·대구시 서구 비산동)
10월 12일자 주제는 술버릇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주소·전화번호·직업·나이를 적어 10월 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