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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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나하고 마주서서 서로 노려보고 있던 놈은 스무살은 된 것 같았다.태권돈지 뭔지 그런 걸 했는지 놈이 완전히 폼을 잡더니 돌려차기로 들어왔다.놈의 한쪽 발이 내 얼굴을 때렸는데 정신이없었다.그렇다고 내가 쓰러지거나 한 것은 아니■ 다.나는 다시재빨리 중심을 잡고 놈을 쏘아보았다.
『얌전히 몇 푼 내놓고 가는 게 어때.』 놈이 성룡같은 자세를 하고 말하는데 내가 무조건 달려들었다.내 주먹이 놈의 턱을맞히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놈을 붙잡고 같이 뒤엉켜서 넘어졌다.아쉬운 게 있다면 어쩌다보니 내가 놈의 아래에 깔린 자세가 되었다는 거였다.몇대를 맞았는지 나도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놈의 멱살을 잡고 있는데 갑자기 놈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자 빨리 피하자구….』 동우가 놈을 차버리고 내 손을잡아주었다.
우리는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서 뛰었다.차에 올라타서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는데 놈들이 우리를 향해 뛰어오는 게 보였다.
동우가 신속하게 시동을 걸면서 한손으로는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었다.그러는데 한 놈이 차의 문을 열어젖히려고 했다 .
『걱정할 것 없어.』 동우는 흘끗 나를 보면서 말했다.
차가 움직이니까 차문의 고리를 잡았던 놈이 몇 발자국을 따라뛰다가 넘어지는 게 보였다.다른 두 놈이 고수부지 입구의 출구쪽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동우도 거칠게 커브를 돌아서 출구를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안되겠어….다른 쪽으로 가.』 내 말을 동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두 놈이 고수부지 출구를 떠억 막고 서 있었는데 동우는 놈들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놈들과 차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10미터…5미터…3미터…. 나는 동우를 한번 쳐다보고 눈을 감아버렸다.동우도 그렇고 놈들도 그렇고 전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가 크게 한 번 덜컹거렸고,차는 계속 달렸다.
『어떻게…어떻게 된 거지.』 『깔아버렸지 뭐.』 동우가 말하고는 음악을 틀었다.또 마이클 볼튼이었다.「잠깐만,내가 가고 있어」였다.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 내가 중얼거렸다.
『그럼 아까 덜컹 했던 게 놈들이란 말이야…?』 『농담이야.
걱정하지마.놈들은 썰렁한 겁쟁이였다구.』 『그럼 아까….』 『그건 속력을 죽이라고 길에 튀어나온 거 있잖아….하여간 코피나닦아.뒷자리에 크리넥스가 있어.』 내가 휴지로 얼굴을 닦는데 동우가 나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달수 너 쌈 잘하던데….』 『나하고 붙었던 놈은 휴지 몇장가지고는 안 될 걸….』 내가 약간은 으쓱하는 기분이 돼서 말했는데,그러고 나니까 어쩐지 동우에게 더 쪽이 팔리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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