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219 - '성은'과 '승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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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좁은 궁궐 안에서 왕이라는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아야 했던 궁녀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곳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는 암투가 싹트고 음모와 비극이 생기는 것도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유의 드라마에는 "하해 같은 성은(聖恩)"처럼 임금의 은혜를 뜻하는 '성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과 혼동되는 말로 '승은'이 있습니다.

"개똥이 박선영이 마침내 성은을 입었다." 드라마 '왕의 여자'에서 '개똥이'라는 미천한 신분의 여자가 임금의 눈에 들어 밤을 같이 지내게 됐다는 것을 표현한 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왕의 총애를 받아 밤에 모시는 것은 '성은을 입었다'가 아니라 '승은(承恩)을 입었다'라고 써야 적확합니다. 물론 시침(侍寢)도 '임금의 은혜'라고 생각한다면 '성은'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으로는 구체적인 뜻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희빈의 경우도 이렇게 승은을 입어 용종(龍種)을 잉태하고 숙종의 총애를 얻습니다. '용종'은 '왕족'이라는 의미입니다. 장씨는 한동안 영화와 권세를 누리지만 나중에 무당을 시켜 인현왕후를 모해한 사실이 드러나 약사발을 받아 죽게 됩니다. 임금이 죄인에게 독약을 내려 죽게 하는 일 또는 그 독약을 '사약'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死藥'으로 알기 쉬우나 이때는 임금이 약을 내린다는 뜻이어서 '賜藥'으로 씁니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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