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81자에 우주의 시작과 끝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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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천부경(天符經)’은 오묘하다. 그리고 내용도 짧다. 81자의 한자가 전부다. 그래서 간결함 뒤에 흐르는 시적인 여운, 그 울림도 크다. ‘천부경’의 유래는 안개 속에 놓여 있다. 단군 시대에 녹도문(鹿圖文·배달국에서 만든 고대 문자로 갑골문자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으로 기록돼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경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다. 불교에선 270자의 ‘반야심경’ 안에 부처의 뜻이 모두 담겼다고 한다. 81자의 ‘천부경’ 안에도 그렇게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다. ‘천부경’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이란 구절로 시작해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이란 구절로 끝을 맺는다. 시작과 끝이 하나란 얘기다. “선과 악, 양변을 여의라”는 부처님 말씀도 생각나고, “나는 알파(시작)요, 오메가(끝)”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떠오른다.

최근 ‘천부경’의 명치를 찌르는 해설서를 만났다. 유·불·선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김백호(48·단일문화원 원장, www.danil.or.kr) 씨가 풀어낸 『천부경』(심거, 1만1000원)이다. 그래서 13일 경기도 일산으로 가서 그를 만났다. 한때는 출가자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총림의 큰스님으로부터 ‘깨달음’에 대한 인가도 받았다. 뜻이 있어 다시 산문을 나온 그는 문답에 막힘이 없는 ‘선지식’이었다. 그에게 ‘천부경’을 물었다.
 

-왜 ‘천부경’인가.

“사람들은 세상을 평면적으로 본다. 평면에는 중심과 변두리가 있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늘 중심을 차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주위를 보라. 다들 그렇게 산다. 그런데 세상의 실체는 평면이 아니다. 둥근 ‘구(球)’다. ‘천부경’은 그 얘기를 하고 있다.”

 -‘구(球)’라니.
 
“둥근 구에다 까만 점을 하나 찍어 보라. 그게 ‘나’라는 개체다. 그 옆에 또 하나 점을 찍어 보라. 그렇게 수백, 수천 개의 점을 찍어 보라.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의 점만 ‘나’라고 여기고 살아간다. 그래서 옆의 점은 ‘남’이 된다. 그게 착각이다.”
 
-착각이라면.
 
“점 하나만 ‘나’가 아니다. 원구 자체가 바로 ‘나’다. 그때는 수백, 수천 개의 점을 찍어도 ‘나’가 되는 것이다. 구 자체도 하나의 점이기 때문이다. 개체와 전체는 그렇게 조화를 이룬다. 이걸 자각해야 한다. 그 얘기가 ‘천부경’ 속에 있다.”
 
-‘천부경’의 첫 문장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이다. 무슨 뜻인가.
 
“‘하나는 비롯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란 뜻이다. 이 ‘하나’는 언어와 생각이 있기 전부터 비롯되는 ‘하나’다. 없다가 생겨난 ‘하나’가 아니라 본래부터 있던 ‘하나’다. 만물과 만사의 근원인 이 ‘하나’를 알면 우주만물을 알게 된다. 그게 ‘깨달음’이다.”
 
-어떻게 다섯 글자에 우주의 이치를 담았을까.
 
“굉장한 파워다. 이건 한 마디로 깨달음의 글이다. 진리의 글은 짧으면 짧을수록 더 좋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선(禪)’이 나온 것이다. 경전의 수가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둘째 문장이 ‘析三極無盡本(석삼극무진본)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다. 왜 ‘천·지·인’이 나오나.
 
“본래인 ‘하나’가 하늘, 땅, 사람의 순서로 쪼개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삼극(三極)으로 쪼개놓아도 근본 다함은 없다, 즉 본성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 ‘하나’는 어떤 식으로 존재하나.
 
“있을 때는 한 덩어리로 있고, 없을 때는 한 덩어리로 없다. 그리고 있음의 한 덩어리와 없음의 한 덩어리가 둘이 아니다. 하나다.”
 
-그럼 없을 때 한 덩어리로 없음을 아는 이는 누구인가.
 “없는 그놈이 안다. 그럼 있을 때 한 덩어리로 있음은 누가 아느냐. 있는 그놈이 안다.”
 
-책에는 ‘삼족오’(三足烏·발이 셋 달린 까마귀)도 그려 놓았다. ‘천부경’과 관련이 있나.
 
“그렇다. ‘천부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본 마음은 본래 태양과 같다(本心本太陽). 높이 밝히면 사람 마음이 천지와 하나가 된다(昻明人中天地一).’ 동이족에게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새’였다. 삼족오를 보라. 한 몸에 발이 셋 달렸다. ‘하나’가 천, 지, 인의 셋으로 쪼개져도 여전히 한 몸임을 뜻하는 것이다.”
 
-왜 ‘태양’인가.
 
“태양은 단순히 밝기만 한 게 아니다. 빛과 함께 에너지도 가지고 있다. 만물을 살릴 수 있는 에너지다. 그래서 고구려의 금동관에 그려놓은 삼족오는 단순한 까마귀가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의 실체를 그려 놓은 것이다.”
 
-‘천부경’에는 여러 설이 있다. 단군 시대에 녹도문으로 기록됐다는 얘기도 있고, 신라의 최치원이 묘향산 석벽에 전래되던 천부경 전문을 새겨 놓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걸 근대에 탁본으로 떴다는 기록도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동이족에게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이 단군 때 문자로 기록됐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누가, 언제 썼느냐는 본질이 아니다. 핵심은 ‘천부경’이 깨친 자의 글이란 사실이다. 크게 깨치지 않았다면 천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가 없는 글이다. 깨친 자리에서 깨친 소리가 난다. 그리고 그걸 부대끼는 삶을 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쓸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고조선 때의 종이와 기록이 발굴된다고 해도 결국 ‘형식’일 뿐이다. 형식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최금복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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