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환희와좌절>6.세계재패 남자하키 반신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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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8월30일 이국땅 폴란드 포즈나니-.
한국의 늦가을을 연상시키는 이날 대첩은 나의 하키선수 생활중가장 극적인 날이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제5회인터콘티넨틀컵(대륙간컵) 하키대회 결승에서 한국은 강호 스페인을 1-0으로 누르고 우승,48년 하키가 국내에 도입된 이래 남자하키가 세계대회 첫 정상에 오른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남자하키 사상 처음 94월드컵 진출권(호주 시드니)을따냈다. 이날 결승전에서 주장인 나는 후배들에게 침착하라고 말했으나 마음속엔 오히려 초조함만 가득했다.
더욱이 예선전에서 3-2로 패배를 안겨준 강호 스페인은 이날우리의 전매특허인 다이아먼드형 돌파작전을 알고 있는듯 철저한 지공과 수비작전을 펼쳐 전반전이 0-0으로 끝나 나는 더욱 다급해 졌다.
후반 5분쯤 자제력을 잃은 나는 상대선수와의 사소한 접촉에 감정적인 플레이로 대응,결국 5분간 퇴장당했다.
그러나 이 5분이 오히려 나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좀더 침착하게 상대의 전술을 간파할 수 있었고 벤치에서 고함치는 金相烈감독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열을 정비한 우리는 후반 31분 柳文基(순천향대)가 우측 엔드라인까지 파고들던 金榮貴(상무)의 논스톱 패스를 받아 그대로 슛,천금같은 결승골을 뽑아냈다.
게임 종료 버저가 울리자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다.
동료들과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운동장을 돌고 감독님을 헹가래칠때 느낀 짜릿한 쾌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여세를 몰아 지난달 14일 아시아컵 남자하키선수권대회(일본 히로시마)에서도 세계 4강인 파키스탄을 4-0으로 대파하고 우승,세계 정상급으로 발돋움했다.
하키를 시작한지 14년이 되었지만 환희의 순간보다는 좌절의 순간이 많아 비인기종목인 하키를 선택했다는 후회와 번민이 늘 꼬리를 물었었다.
하지만 93년은 내 인생에 있어 승리의 쾌감과 하키인으로서 거듭 태어났다는 자부감이 충만한 한해로 남을 것이다.
영원한 승자가 없는 스포츠계에서 또한번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나는 다시 운동화끈을 조여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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