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쌀수입 동결은 불가” 쐐기/막판 줄다리기 제네바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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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농민 대표들 “쌀사수 혈서 쓰겠다”/“한국 조건이 더 유리” 일본측 당황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타결이 막판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쌀시장 보호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미국이 쌀시장 보호대가로 「보따리」를 많이 풀라고 요구함에 따라 적잖이 고심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9일 오후 11시(현지시간)부터 10일 오전 2시까지 마라톤협상을 갖고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문제를 집중 논의했는데,미국측은 『한국이 선진국 수준으로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은 9일 고위 실무자협상에서 쌀시장 개방문제에 대해 큰 시각차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협상에서 한국이 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며 『쌀수입을 일정기간 동결하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미국은 『한국에 주기로 잠정 양해한 것에 대해서도 일부 국가의 반발이 있는데 동결까지 해줄 경우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강조.
미국은 특히 『쌀시장 개방을 10년간 유예해주는 것은 검토할 수 있지만 「동결」은 다자간 협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쐐기를 박았다는 것.
이에 대해 한국은 『동결을 요구하라는 본국의 훈령만 내려와 있을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버텨 미국은 결국 『쌀문제는 양국의 중대사안이니 장관급에서 협의토록 하자』며 화제를 금융시장쪽으로 돌렸다는 후문.
○…하타 쓰토무(우전자) 외상겸 부총리가 쌀시장 개방으로 나빠진 국민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번주중 제네바로 날아온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이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은 벌써부터 제네바에 가 쌀시장 보호를 위해 막바지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일본정부 관리들은 도대체 뭘하느냐」는 일본 국민들의 비난 때문에 하타 부총리가 제네바행을 결정한줄 안다』고 설명.
일본정부는 특히 김영삼대통령이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담화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총리에 앞서 발표하고,한국이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쌀시장을 개방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매우 당황하고 있다고.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은 10일 주제네바 일본·호주·스위스·뉴질랜드 대사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본부 주변 식당에 초청,오찬을 함께하면서 한국산 쌀에 대한 특별조치에 대한 협력을 요청.
이 자리에서 허 장관은 최근 쌀시장 개방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 소식을 자세히 전하면서 한국의 분단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쌀시장 보호가 불가피하다고 강조.
이에 대해 이들 대사들은 한국측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강봉균 경제기획원 대외조정실장이 전언.
쌀시장 개방 반대의사를 GATT 회원국들에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지난 6일 제네바로 온 농민대표 8명중 2명이 11일 오후(한국시간) GATT 본부 앞에서 「쌀시장 개방 결사반대」라는 혈서를 쓸 계획이어서 눈길.
농민들은 당초 피터 서덜랜드 GATT 사무총장을 만나 무려 1천3백만명이 서명해 기네스북에 오른 「쌀시장 개방반대 서명록」 가운데 1백만명분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서덜랜드 총장이 면담을 거절함에 따라 혈서를 쓰기로 한 것.
이에 앞서 농민 대표 8명은 GATT 본부 앞에서 쌀시장 개방 반대의사를 밝히기 위해 삭발을 단행.
한편 농민들의 항의시위 통역을 맡은 장정애씨(30)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제주도에서 직접 감귤농사를 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화제.<제네바=이장규·박의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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