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읽기에 들어간 “쌀개방”/정부대표단 UR협상서 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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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와 마지막 담판에 실낱같은 기대/얼마나 좋은 조건 얻느냐가 더 관심
우루과이라운드(UR) 태풍의 눈인 제네바의 분위기로는 「쌀 수입개방 불가피」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 일행이 날아와 여러모로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이미 대세는 판가름났다.
허 장관 일행의 설득작전은 유럽공동체(EC)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측의 종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그쳤을 따름이다.
허 장관은 한국의 어려운 현실을 간절하게 설명했으나 EC의 슈타이헨 농업집행위원이나 GATT의 서덜랜드 사무총장 역시 『관세화의 원칙에는 어떤 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혔다. 특히 서덜랜드 사무총장의 경우 더이상 미련을 갖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충고까지 곁들였다.
○“예외없다” 반복
이제 남은 설득대상은 미국의 에스피 농무장관(한국시간 4일 오후 면담예정) 한 사람인데,실질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여기서 결말이 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도 쌀 수입개방 자체는 토론의 대상에서 애당초 제외시키려할께 뻔한다. 다만 우리의 어려움을 그처럼 강조함으로써 쌀개방의 조건을 얼마나 유리하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냐가 관심거리다. 특히 아무리 UR가 다자간 협상이라 하더라도 쌀문제에 관한한 최대의 당사국이 미국이므로 이날 회담이 사실상 마지막 협상기회라고 할 수 있다.
농산물에 대한 「예외없는 관세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일한 동조국은 캐나다다. 지난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APEC) 각료회의에서도 한국과 공동보조를 취하자고 다짐했었다(캐나다는 쌀이 아니라 낙농제품들이다).
캐나다의 경우 우리와 유사한 입장에서 놓여 있으므로 한발짝 더 나가 있다. 일본이 백기를 들자 이들도 「예외없는 관세화」 자체는 어쩔 수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다시 말해 기본원칙은 받아들이되 유예기간(6년)이나 적용되는 관세율(최소시장 접근율 4∼8%)면에서 일본의 합의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가서도 대세수용
따라서 쌀문제에 관한한 이제 남은 문제는 한국이나 캐나다가 일본 케이스를 그대로 받는데 만족하느냐,아니면 얼마나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도 희망적 관측과 비관적 관측이 엇갈린다. 허 장관의 설명처럼 『세계 농산물시장에 있어 한국의 비중이 상당한 만큼 다른나라들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정도 예외조치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캔터 무역대표부 대표가 일부러 시간을 쪼개가며 허 장관의 면담요청에 기꺼이 응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비관적인 측면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한국이나 캐나다에 별도의 예외적인 유예조치를 해줄 경우 이미 합의한 일본과의 문제가 생겨난다. 부속합의의 내용을 일반적인 것으로 하려면 일본도 한국의 기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요,그렇지 않으면 국별 부속합의를 일일이 첨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입장유보 불가능
아무튼 제네바에서 돌아가고 있는 UR협상 분위기는 국내에서 흥분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미국·일본·EC 등 큰손들끼리의 중요한 줄다리기가 매듭지어진 만큼 이제 남은 일은 각 분야의 사소한 일들을 예정된 일정표에 차질이 없도록 마무리지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이 그처럼 목을 매고 있는 쌀문제도 전체 UR 협상에 있어서는 바로 이 「사소한 문제」들의 하나라는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든 더이상의 입장유보는 불가능하게 됐다.<제네바=이장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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