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의원」에 당한 교육감/박종권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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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매일같이 새로운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초정보화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네지만 독서율은 부끄럽게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을이 되면 「독서의 게절」이라며 범정부차원의 대대적 책읽기운동이 펼쳐질 정도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도서관을 짓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교육감이 국회의원으로부터 욕지거리를 듣는 봉변을 당해 씁쓸함을 안겨주고 있다.
20일낮 서울 마포구 서교국민학교 교장실에는 도서관건립을 반대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몰려들었다.
서울시 교육청이 어렵사리 72억원이라는 거액을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아 마포구민을 위한 도서관을 짓겠다는 것이지만,학부모들은 『다른 곳이면 몰라도 자신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짓는 것은 「교육환경저해」이므로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교육청은 이미 따놓은 예산이 아까워 학교측에 수영장·강당·가스난방 등 엄청난 조건을 약속했으나 학부모들은 막무가내로 지난 5월12,13일 교문을 막고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했다.
20일에도 교장실에는 지역민원 해결차 이 지역 출신 박주천 국회의원(민자)이 찾아왔다. 「해결사」를 자처한 박 의원은 『내가 해결하겠다』며 의기양양하게 교육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몇마디 말이 오가는가 싶더니 박 의원의 입에서는 이내 욕지거리가 터져나왔다.
『이 ××가…,…네가 높으면 얼마나 높아…,뭐 이런게 있어….』
사연인즉 박 의원이 이준해교육감을 현장으로 나오라고 호출했고,이에대해 이 교육감은 『이미 세차례에 걸친 학부모와의 면담에서 모든 사항을 설명했고 다른 공무로 시간을 내기 힘들다』며 호출명령에 불응(?) 했던 것이다.
박 의원의 갑작스런 욕지거리에 어리둥절해하며 오히려 놀란 쪽은 함께 자리하고 있던 교장·교사,그리고 학부모들이었다.
한 교사는 『수도 서울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고,7만여 교사의 수장인 교육감에게 입에 담기 힘든 「비교육적」 언사를 내뱉는 것을 보면 「하루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시내 교장단과 교육청측은 박 의원에게 항의사절단을 파견키로 했다지만 그보다 양서 몇권을 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장소·상대를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내뱉는 선량에게 자질함양이 필요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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