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압수 JP 고서화/향방싸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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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고귀속 규정 어겨… 진상 꼭 밝혀야 한다”/당시 관계자들 “그럴리가 없다” 극구부인
김종필 민자당 대표가 지난 80년 5·17때 신군부에 빼앗겼다는 대원군의 난병풍을 두고 시중에 화제가 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들(신군부)이 새벽에 집으로 쳐들어와 대원군의 난초그림이 든 병풍고 김옥균선생이 쓴 글씨 등을 빼앗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다.
세간의 흥미는 김 대표가 『그 난병풍을 지금 누가 갖고있는지 안다』고 덧붙인데서 비롯됐다. 민자당 안팎에서도 궁금증이 부풀어올랐다. 한 공화계 당직자는 『30일 져녁 구자춘의원 등 김 대표와 친한 인사들이 김 대표에게 「우리는 좀 알고 넘어가야 할 것 아니오. 도대체 병풍은 누구 집에 있는거요」라고 끈질기게 물어 보았으나 끝내 대답해 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29일 간담회에서 『누가 갖고있는지 알고 있다면 왜 돌려달라고 하지 않느냐』고 묻자 『누가 갖고 있든 한국에만 있으면 되는 거지』라고 넘겨버렸다. 김 대표는 30일 측근들에게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옛날 총리시절에 재벌을 심하게 공격하는 의원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 그 사람들이 몇백년 살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재산은 우리나라에 남게 되는 것 아니냐고. 지금 내 심경도 그렇다.』
김 대표가 병풍의 행방을 알게된 경위에 대해 한 주변인사는 『어떤 국회의원 부인이 신군부출신 인사의 집에 갔다가 우연히 그 병풍을 목격하고 박영옥여사(김 대표 부인)에게 귀띔해주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신군부 출신들은 이에 대해 한결같이 『그럴리가 없다』거나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고서화 전문가들에 따르면 난병풍은 진품일지라도 작품성·보존상태·병풍의 폭수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 대원군의 난병풍일 경우 가장 큰 12폭 병풍으로 아주 좋은 상태라면 현 시가로 1억5천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과거 비리를 바로 잡는 차원에서 병풍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면 몰라도 법적으로는 병풍은 이미 김 대표의 것이 아닌 것 같다.
한 현직검사는 『김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로 『당시 신군부의 행위가 공갈이냐,절도냐가 우선 문제시되는 김 대표를 먼저 연행한 뒤 압수수색 형식을 빌려 재물을 갖고가 일부를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다면 절도에 해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효로 윤노파살해사건때 압수된 피해자의 통장을 빼돌린 현직 경찰관에도 절도혐의가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특가법을 적용해도 공소시효(10년)는 이미 지났다. 김 대표가 국가나 개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낼지라도 시효가 불법행위를 안날부터 3년,불법행위가 있던 날부터 10년이기에 역시 불가능하다. 공갈죄를 적용해도 공소시효는 7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론은 역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쪽이다. 또 미술품의 행방 못지않게 무일푼의 5·16쿠데타 주역이었던 김 대표가 그런 고가품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모았는지도 입초시에 올라있다. 때문에 이 문제는 김 대표에 대한 동정보다는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시비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관심사이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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