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파산 1000명당 2.6명 매년 세배 이상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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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우리나라의 개인파산 신청 비율이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개인파산까지 가기 전에 의무적으로 빚 상환 노력을 증명토록 하는 등 채무자 스스로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법원도 재산을 빼돌리고도 빚 탕감을 받는 악의적 파산신청자를 가리기 위해 보다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키로 한 바 있다.

 ◆급증하는 파산 건수=금융연구원의 이순호 연구위원은 5일 ‘파산제도의 경제적 역할 및 제도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파산제도가 남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2005년에 비해 216% 급증한 12만2608건을 기록했다. 이를 인구 1000명당 파산 건수로 환산하면 2.6명으로, 미국(5명)과 프랑스(3명)에 비해서는 낮지만 독일·영국·네덜란드·벨기에와 같은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았다.

 이 위원은 “올바른 파산제도는 회생 가능한 채무자의 자력갱생을 도와 여러 가지 사회복지비용을 줄이고 노동력의 재활용을 가능하게 한다”며 “그러나 파산제도의 남용은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최근 3년간 매년 세 배 이상 급증하고 있지만 일정 비율 빚을 갚으면서 재기를 도모하는 개인회생제나 개인워크아웃제 신청자는 제자리걸음이거나 감소세다. 개인회생 신청자는 지난해 5만6000여 명으로 2005년에 비해 15.7% 늘어나는 데 그쳤고,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지난해 8만여 명으로 2004년(28만여 명)에 비해 3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었다. 채무자들이 능력 되는 대로 조금씩이나마 빚을 갚으며 회생을 도모하기보다 아예 빚을 갚을 필요가 없는 개인파산 신청으로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파산은 최후 수단이어야=미국의 경우 개인파산은 경기 침체기보다 경기 상승기에 증가하는 등 도덕적 해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순호 위원은 이 같은 남용을 막기 위해 몇 가지 선진국 사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독일은 1999년 파산법 시행으로 채무자가 파산신청 전에 채무변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파산을 신청할 수 있다. 미국도 2005년 파산법을 개정해 파산신청 이전에 신용상담을 반드시 하도록 했고, 면책결정 전에는 신용·채무관리 교육을 받도록 해 파산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이 위원은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 파산 이전에 소비자 스스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최대한 유도하고 파산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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