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모두 석방될 때까지 배 목사 시신 안 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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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해 피살된 배형규 목사의 유해가 30일 오후 아랍에미리트항공 EK 322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배 목사의 시신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쳤다. [사진공동취재단]


고 배형규 목사의 유족들은 30일 솟구치는 슬픔을 속으로 삭였다. 배 목사의 시신이 인천공항을 통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유족 아무도 공항에 나가지 않았다. 시신이 임시 안치된 경기도 안양의 병원도 찾지 않았다.

대신 경기도 성남시 분당타운 내 피랍자 가족모임 사무실에서 22명의 피랍자 가족과 함께 무사귀환 기도를 올렸다. 지금은 배 목사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피랍자 석방을 위해 집중돼야 할 때라는 이유에서다.

배 목사의 부모는 "같이 간 일행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을 절대 보지 않겠다"며 제주도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부인과 형은 분당에 남아 다른 피랍자 가족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했다.

피랍자 가족들은 "시신을 부여안고 울지도 못하는 배 목사 부모와 부인의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배 목사의 형 신규(45)씨는 "장례 일정은 피랍자들이 전원 석방된 이후로 연기했다"며 "그때까지 고인에 대한 일체의 추모행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양 샘병원에 시신 안치=배 목사의 시신은 이날 오후 5시쯤 아랍에미리트항공(EK 322) 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해 검역 등 인수절차를 거친 뒤 7시30분쯤 안양 샘병원으로 옮겨져 임시 안치소에 냉동 보관됐다. 수원지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찰.교회 관계자가 입회한 가운데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시신을 검시했다. 박상은 샘병원장은 "아프간 현지에서 작성된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두부 총상'이라고 기록돼 있으나 검시만으로는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유족들이 '정부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시신을 부검하는 데 동의했다"면서 "부검 시간과 장소는 31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배 목사의 뜻에 따라 시신을 기증할 예정이지만 총상과 고온으로 시신이 훼손돼 기증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살해 위협 한때 긴장=오전부터 사무실에 나와 있던 피랍자 가족 20여 명은 오후 6시쯤 '협상 결렬, 인질 살해 위협' 외신 보도가 이어지자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믿고 기다려 달라"는 연락을 받고 안정을 되찾았다.

분당.안양=장주영 기자, 김인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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