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방학이라고 온종일 뒹구는 아이… 잔소리 없이 해결 안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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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운드걸 놀이, 스포츠 중계 하기

 이숙향(29)씨는 아들 성호(7)에게 부채를 이용한 ‘라운드 걸’ 놀이를 시킨다. 손잡이가 달린 부채에 세수하기, 양치질하기, 밥 먹기, 옷 갈아입기, 잠자기 등의 그림을 그려 붙인다. 성호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세수하기’ 부채를 들고 집 안을 한 바퀴 돌게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주제가를 배경음악으로 틀어주면 효과 만점. 아이는 신나게 한 바퀴 돈 뒤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신현미(38)씨는 스포츠 중계 하듯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만들어 아들 석현(10)을 재촉한다. “네, 김석현 선수 지금 숙제를 안 하고 계속 놀기만 하는데요. 저러다 저녁밥도 못 먹고 TV 시청도 못 하게 될 텐데 걱정입니다. 네, 말씀 드리는 순간 바로 숙제를 하러 가는군요. 파이팅!”

 아이가 어리면 승부욕을 자극해볼 만하다. 이성숙(33)씨가 딸 정화(6)에게 종종 쓰는 방법이다. 타이머로 10분을 맞춘 뒤 “정화는 타이머가 울기 전에 장난감 정리를 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 딱 10분인데”라고 말한다. 그러면 정화는 “아냐, 할 수 있어요”라며 재빨리 정리를 시작한다. 옷 갈아입기, 신발 신기 등에도 응용할 수 있다. 세 가지 사례 모두 엄마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채근하는 대신 아이의 흥미를 돋우면서 자연스레 할 일을 알려주는 효과가 있다.

#잔소리 대신 ‘규칙’으로

 잔소리를 대신하는 기발한 방법이 장기적으로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화전문가 이정숙 ㈜SMG 대표는 “잔소리를 일종의 규칙으로 받아들이게 해 권위를 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경숙(45)씨는 아들 한규(12)와 ‘엄마와의 약속’이라는 계약서를 만들었다. 생활수칙을 지켰을 경우의 보상과 지키지 않았을 경우의 벌칙도 적어 넣었다. 이씨가 숙제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대신 한규는 숙제가 끝나야 TV를 볼 수 있는 식이다.

 고미순(42)씨도 아들 병성(14)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대신 책상 앞에 도표로 그린 ‘공부 현황’을 붙여줬다. 해야 할 공부가 어떤 건지,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를 기록하게 했다. 또 방학 중 꼭 해야 할 일을 연습장에 항목별로 적어 실천하면 한 개씩 지우게 했다. 중학 1학년생 아들을 둔 이지효(42)씨는 평소에는 아이와 ‘주말에 한 번 대청소, 지키지 않으면 외출 금지’를 규칙으로 정했다. 평일에는 아이 방이 아무리 지저분해도 꾹 참는다.

 그냥 내버려둬 아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무언의 잔소리’도 요긴할 때가 있다. 단, 문제 해결까지 시간이 좀 걸리므로 부모의 참을성이 요구된다. 유진(10)은 준비물 챙기는 걸 잊어 늘 학교에서 주의를 들었다. 엄마의 해결책은 속은 터지지만 그냥 놔두기. 그러던 어느 날 유진은 체육복을 챙겨가지 않아 노란색 체육복을 입은 급우들 사이에서 혼자 검은색 셔츠를 입은 채 체육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다음부터는 말하지 않아도 준비물을 꼭꼭 준비한다. 잔소리 빈도를 낮추려면 무엇보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관대함을 가져야 한다. 이정숙 대표는 “아이를 부모 기준으로 보면서 ‘왜 너는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느냐, 답답해 죽겠다’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이가 어리고 미숙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느긋하게 대하면 아이도 마음을 열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허지현 패밀리 리포터 <misaye@naver.com>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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