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버스 파업, 시민이 멈추게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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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힘으로 노조의 무리한 파업을 꺾었다. 3일 새벽 타결된 대전 시내버스 파업사태의 승자는 '시민'이었다.

시민들은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도 참고 견디면서 협상 당사자인 대전시에 "원칙을 고수하라" "절대 노조에 굴복하지 말라"는 격려를 보냈다. 이런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대전시는 원칙을 지켜 시내버스 운송사업조합이 제시한 협상안을 관철시켰다.

대전 버스노조는 지난달 22일 기본급 10.4% 인상을 요구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대전시는 2005년 7월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시민 세금으로 버스업계를 지원했다. 2005년 첫해 115억원을, 지난해엔 250억여원을, 올해는 290억원을 지원했다. 노조원들의 평균 월급이 320만원(7년차 기준)에 이르렀다. 최근 3년간 대전 버스기사의 임금인상률은 부산에 이어 2위였다.

시민들은 이런 노조원들이 파업을 하자 분노했다. 협상 당사자인 시에 원칙을 지켜 노조에 밀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불편하더라도 명분 없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하지 말라는 시민의식도 퍼졌다.

파업 10일째인 2일 오전 8시10분쯤 대전시 중구 용두동 한 아파트단지 입구. 승용차 다섯 대가 앞 뒤 유리창에 '시청.대덕연구단지.유성 방면으로 갑니다. 같은 방향이면 태워다 드릴게요'라고 쓴 종이를 붙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10분쯤 지나 이들 승용차는 3~4명의 시민을 태우고 떠났다. 시민들이 시내버스 파업으로 불편을 겪는 이웃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카풀운동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이 운동에 동참한 장강훈(46.대전시 중구 용두동)씨는 "수백억원의 세금을 쏟아부어 운영하는 시내버스 회사의 노조원들이 시민들의 불편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요구만 고집하는 것을 바로잡으려고 카풀운동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시가 비상투입한 전세버스를 이용했던 최미연(54.대전시 서구 둔산동)씨는 "배차간격이 15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나 기다리는 시간이 불편했지만 올바른 파업문화 정착을 위해 참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가세했다. 지난달 28일 대전시청 9층 브리핑룸은 하루종일 북적거렸다. 시내버스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각급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및 성명 발표가 잇따랐다. 이날 하루 동안 대전참여자치연대 등 20여 개 시민단체가 파업 철회를 요구했다. 대전시내 128개 단체 1200여 명은 30일 중구 은행동에서 파업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도 가졌다.

노조에 무릎 꿇지 말라며 자원봉사에 나서는 시민도 많았다. 1000여 명은 전세버스에서 노약자를 돌보는 승무원으로 활동했다.

시민들은 대전시 인터넷 홈페이지에 "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한 파업은 용서할 수 없다" "우리가 불편을 참을 테니 파업에 절대 굴복하지 마세요"라는 격려의 글을 올렸다.

이렇게 시민들이 똘똘 뭉치자 노조는 11일 만인 3일 새벽 파업을 철회했다.

노조는 애초 요구했던 10.4% 임금인상을 포기하고 시내버스 운송사업조합이 제시한 기본급 3% 인상안을 받아들였다. 시 관계자는 "이번 대전 시내버스 파업은 전국 5대 도시 버스 파업 중 가장 길었지만(2004년 대구 시내버스 9일이 최고) 시민들이 참고 견디면서 힘을 보태줘 원칙대로 타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전=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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