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동본 금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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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전통사회는 씨족사회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예부터 한 지역에 한성씨가 자리잡아 수백년을 번창하면서 문중을 이뤄 살았기 때문에 그 지역의 풍토적 열성요인을 함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 풍토적 열성요인은 같은 지역에서 혼인이 이뤄지는 경우 혈통적 약점으로 작용해 건강한 자식을 얻는데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믿었다. 오래전부터 관행으로 지켜져온 「백리내 불혼」원칙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동성동본의 혼인은 실상 「백리내 불혼」이 원조인 셈이다. 부계 혈통의 열성인자끼리의 결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며,여기에다 유교적 합리주의에 따른 윤리·도덕관이 덧붙여진 것이다.
중국 후한때의 『백호통』은 「동성을 취하지 않음은 인륜을 중히 여기고 음란해지는 것을 막아 금수와 같게 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라 했고,오경의 하나인 『예기』를 보면 「장가를 가되 동성인 아내를 얻지 않는 것은 그 분별하는 바를 더욱 엄격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결국 우리네 「백리내 불혼」관행과 중국의 동성동본금혼 관행은 표현만 다를 뿐 그 뿌리는 같다. 그러나 굳이 과학적·우생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동성동본금혼보다는 「백리내 불혼」쪽이 훨씬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수백·수천년이 흐른 후의 동성동본이란 우생학에 따른 부부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별다른 하자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중국은 이미 60여년전에 근친간이 아닌 동성동본간의 결혼을 허용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고 있어 잦은 논란을 빚어왔다.
78년과 88년 두차례에 걸쳐 한시적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으나 아직도 법적으로 부부가 아닌 동성동본부부는 20만쌍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게 무섭다」며 동반자살한 남녀가 있는가 하면,「동성동본금혼법이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다」며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남녀도 있다. 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민자당은 그 규제를 10촌이내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니 합리적인 해결이 기대된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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