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누룽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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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중·일 3국의 음식문화는 쌀을 주식으로 하여 비슷한 발전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같은 음식이면서도 차문화는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학자나 전문가들은 그 까닭이 우리에게는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차에 대응할만한 훌륭한 숭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숭늉의 구수한 맛은 중국이나 일본의 어떤 차맛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쌀을 익혀 밥을 지어 먹기로는 마찬가지였는데도 한민족들만 숭늉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밥짓는 방식에 각기 다소간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쌀에 물을 많이 넣어 충분히 끓인 다음 물을 퍼내고 약한 불로 뜸을 들이거나 다시 찌는 방법으로 밥을 지었기 때문에 누룽지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한민족과 일인은 일정한 쌀과 물을 솥에 넣고 물이 없어질때까지 익히는 방법으로 밥을 짓는 것은 똑같았으나 일인들이 누룽지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던데 비해 한민족은 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가급적 많은 누룽지가 생기도록 했다. 그것은 부뚜막과 아궁이와 온돌이 일체로 되어 있던 우리네 부엌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솥이 고정돼 있어 밥을 지은 다음 씻기가 힘들기 때문에 누룽지를 만들면 구수한 숭늉도 마실 수 있고,설거지도 쉬워 일거양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화돼가는 과정에서 우리네 부엌살림도,밥짓는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부뚜막·솥 같은 것이 차츰 자취를 감춘 대신 알루미늄솥이나 전기밥솥 같은 것이 밥짓기를 도맡게 됐다. 억지로 밥을 태워 누룽지를 만든다 해도 전통솥에서 밥을 지을때 생긴 누룽지나 숭늉맛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누룽지나 숭늉맛에 대한 향수에 착안한 것이 중국 사람들이다. 요즘 시장에 가보면 누룽지를 쌓아놓고 파는 상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럴듯하게 숭늉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점들도 많아졌다. 집에서 만든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실은 중국에서 소포 따위로 몰래 들여온 것들이라는 얘기다. 우리 고유음식인 누룽지·숭늉까지도 남의 것을 먹어야 하니 뭔가 크게 잘못된 느낌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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