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대결 입씨름 “점입가경”/자극적 말씨·물고 물리는 혼전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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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클린턴 서신싸고 “사대주의” 험구·조롱 민자­민주/간첩단·금권정치 공방 통일논쟁 비화 민주­국민
대선 전초전을 알리듯 3당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민주당·국민당간에 「간첩단 사건연루」「금권정치」라는 공방전이 오가는 와중에 이번에는 민자당·민주당간에 「클린턴 서신」「0303민원전화광고」를 둘러싼 조롱과 험담이 추가돼 3당간에 서로 물고 물리는 혼전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3당은 한결같이 대선전초전의 기세를 꺾이지 않으려는듯 상대를 자극하는 어투를 골라쓰고 있다.
「클린턴 서신」 공방은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민주당 클린턴후보의 승리로 확실시 돼가는 가운데 김대중대표에게 보낸 클린턴의 편지를 민주당이 공개하자 민자당이 「사대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시작됐다.
민주당은 20일 『클린턴이 집권하면 주한미군이 대폭 감축되고 무역마찰이 증대될 것』이라는 외무부의 보고서가 나오자 이를 반박한다며 『집권하더라도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한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내용의 클린턴 편지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내심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케네디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김 대표를 「용기있는 사람들」의 한분이라고 말했을 것』이라는 클린턴의 김 대표 칭찬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홍사덕대변인은 발표당시 『클린턴은 김 대표의 민주화 정착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정치가 국내정치에 적지않은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론할때 민자당의 반응은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가 보다.
김영삼민자당총재가 직접 『클린턴의 보좌관이 김 대표의 사신에 대한 의례적 답신차원에서 보낸 것으로 특별한 정치적 의미는 없는 것 같더라』고 일단 평가절하했다. 동시에 박희태대변인도 성명을 발표,『의례적인 답신을 마치 큰 정치적 의미나 있는 것처럼 부각시켜 대선전략에 이용하려는 것은 사대주의 외교의 표본』이라고 비난하면서 『우호와 사대,협력과 자주는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고 감정을 건드릴만한 한마디를 곁들였다.
그러자 민주당은 당장 다음날인 21일 박지원부대변인의 입을 빌려 『외무부의 경솔한 국회보고를 보고 국민의 오해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사실을 발표할 것』이라며 김영삼총재의 평가절하발언을 『옹졸한 언행』이라고 감정실린 반박을 내놓았다.
또 「사대주의」라는 논평에 대해서는 별도로 김 총재의 소련방문때 고르바초프와 회동한 사실을 빗대 『고르바초프와 악수 한번 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자랑했던 것이 사대주의』라고 한층 신경을 건드리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이에 덧붙여 같은날 홍사덕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민주당에서 민원전화를 자랑하며 전일간지에 광고했던 내용에 대해 『시행된지 50일이 지난 전입신고간소화 행정지침을 김영삼후보의 정책처럼 선전했다』며 『이른바 0303민원전화가 사기극의 소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개탄한다』고 비난했다. 또 『조사해보니 광고에서 전화를 했다고 하는 안동의 김광식씨라는 사람도 가공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민자당은 이원종부대변인을 통해 『전입신고간소화가 10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안되는 지역이 많아 이를 개선하자는 뜻이며,김광식씨는 실존인물이다. 그런 사람 없다는 얘기가 사기성 거짓말』이라고 강하게 반박한뒤 『민주당은 자기들 할일이나 제대로 찾아하라』고 신경질적으로 되받아쳤다. 그는 이와 함께 『미국 대통령후보나 유권자가 한국대통령을 뽑는줄 아는 모양인데 민주당은 제정신을 차렸으면 한다』고 클린턴 서신얘기를 다시 들먹이며 노골적인 공세를 더했다.
공방은 계속돼 민주당 박지원부대변인이 다시 22일 오후 논평을 발표,『클린턴후보와 김 대표간의 돈독한 관계에 대해 김영삼총재를 비롯,모든 당직자들이 시샘성 발언으로 민자당외교의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이해한다』며 『집안싸움 하지말고 뒤늦은 경제공부나 열심히 하기 바란다』고 또다시 비아냥댔다.
양당의 공방전에 국민당도 새로운 얘기로 가담하고 있어 난전은 3파전의 모양을 갖춰 가는 느낌이다. 정주영대표는 22일 당원단합대회에서 양김씨를 싸잡아 과거 국민당 김동길최고위원이 주장했던 「낚시론」을 들고 나왔다. 정 대표는 『대통령병에 걸린 양김씨는 이제 정말 낚시터로 가야 한다』며 『이들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세계경제대전에서 견딜 수 없게 된다』고 몰아세웠다.
국민당은 이날 아침에도 당직자회의에서 김대중대표가 정 대표의 흡수통일론을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한데 대해 『오히려 김 대표의 통일론이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궤를 같이하는 위험한 생각』이라며 색깔시비를 확산하려고 했다.
민주당 박지원부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국민당 김동길최고위원의 『현대와 국민당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인터뷰 발언에 대해 『정서가 불안한 「현대국민당」의 망언에 대해서는 군소정당으로서 일선정치의 반열에 들어서려는 애교로 보면서,이번 국감에서 우리당 의원들의 성과에 따른 국민적 인기상승을 시샘하지 말고 현격한 실력차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남아있는 기간이나마 국정감사에 성실하게 임하기 바란다』는 역시 조롱섞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적 함의도 있어 보이지 않는 이같은 저차원의 말싸움은 앞으로 대선전이 본격화될수록 더욱 노골화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대선은 세계적 탈이념화와 국내정치의 민주화 덕분에 과거와 같은 민주·반민주의 노선싸움이나 이념논쟁 가능성이 줄었기 때문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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