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에서 건져낸 시한부 삶, 감동적인 이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호 02면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자살공화국’이라는 말이 익숙해졌습니다. 물론 오명(汚名)입니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황혼 자살’만 보면 세계 1위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사망자 세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라는, 우울한 추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셜 리포트는 자살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살공화국’에서 생(生)의 참된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제작됐다고 할까요. 시한부 인생이지만 의미 있게 사는 이들과, 그 주변인의 감동적인 ‘내러티브(narrative)’가 주 내용입니다. 곧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아주머니, 남편을 떠나 보낸 아내, 호스피스 병동을 지키는 수녀, 온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 환자 등이 등장인물이지요.

어느 날 갑자기 의사한테서 “당신은 말기 암 상태”라는 통보를 받는다면, 솔직히 저는 죽을 때까지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살려 안간힘을 쓸 것 같습니다. 죽을 때까지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괴롭힐지도 모릅니다. 한 해 사망자 24만여 명과 그리고 가족ㆍ친구ㆍ이웃…. 많은 이가 안타깝게 세상과 이별합니다. 그런데 스페셜 리포트의 등장인물들은 바로 세상의 끝이 코앞에 왔는데도 스스로 존엄을 지키고 남을 돕기까지 하는 ‘이타적인 인간’입니다. 이기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신앙 유무에서 올지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해보지만,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닙니다.

‘시한부 삶, 아름다운 이별’을 다룬 이번 호는 병자보다는 건강한 사람이, 노인보다는 청년ㆍ청소년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세상을 하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루 하루를 좀 더 값지고 짜임새 있게 살지 않을까요. 끝으로 취재 과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선구ㆍ민동기 기자는 지난해 3월부터 14개월 넘게 몇몇 말기 암 환자를 관찰해 왔습니다. 말이 14개월이지, 미국과 달리 긴 호흡의 취재가 어려운 국내 언론 환경에서 두 기자의 끈질긴 취재욕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말기암 환자 김점자(가운데) 씨를 14개월간 취재한 변선구(왼쪽)·민동기 기자. 지난해 3월 찍은 사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