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택폭이 좁아졌다/개편되는 동북아질서(한·중 수교시대: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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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은 멀리할 수 없는 “파트너”/남북관계 긍정적변화 가능성도
한중수교는 북한의 운신을 제한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중수교로 북한의 처지는 과거 어느때보다 어려워졌다.
사회주의 맹방인 중국의 한국과의 수교는 사상적인 의미에서 「마지막 동지」를 잃어버린 것일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동북아지역 질서재편이라는 커다란 흐름에 보조를 같이 할 수 있는 파트너마저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중수교가 개방과 개혁에 신경을 쓰라는 중국측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도 북한에 곤혹을 안겨주는 한 요소다.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어온 중국이 수교 이후 한국과 경제협력을 본격적으로 확대해나갈 경우 북한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것이 분명하다.
동구권의 붕괴직후 돌파구로 모색했던 대미·대일접근 등 적극적인 대서방 외교도 북한의 핵이라는 문제에 부닥쳐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소다.
요컨대 한중수교는 북한내외에 걸친 최대위기로 간주할만한 상황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북한은 힘겨운 선택들을 해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선 화급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한중수교와 관련해 북한이 보이고 있는 반응은 한소수교 때의 반응과는 전혀 다르다.
당시 북한은 소련이 「달러로 외교를 샀다」면서 격렬히 비난했었다.
그러나 한중수교와 관련된 보도 이후에도 북한은 중국에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수교에 대해 중국과 북한 사이에 충분한 사전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를 버릴 수 없는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 우호,북한지도부와 중국지도부의 친밀한 인간관계 등도 그같은 교감을 가능케 하는 큰 요인으로 꼽힌다.
91년 1월 주북경 한국무역대표부가 설치된 이후 수교는 기정사실화 되었음에도 북의 요구가 사실상 수교 자체를 막기보다는 이를 연기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던 점을 보면 북측도 오래전부터 이에 대비해 왔을 것이다.
이같은 충분한 시간에 걸친 상호교감은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한편으로 북한을 다독거리기 위한 조치가 있었으리라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민족통일원의 박영규정책연구실장은 『한­러 관계의 심화에 따라 한반도에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는 중국이 수교를 통해 남한에 영향력을 확보하고,한중수교로 인해 북한에서 줄어드는 영향력은 모종의 반대급부 제공을 통해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요컨대 중국과 북한은 아직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중수교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관계냉각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관계에서 볼때 한중수교는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방향으로 자극을 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현재 7차에 걸친 교섭에도 불구하고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북·일 수교교섭에 한중수교가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향후 북한은 북·일 수교와 북·미 관계개선의 정당성과 명분을 더욱 강조하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북한간의 협의창구의 격상과 같은 것도 예상된다.
한중수교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고있는 중국이 미국과 일본에 대북관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외교적인 지원을 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일 수교와 북·미 관계개선은 핵문제가 걸려있어 쉽게 진전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 분명해 향후 행보가 주목될 수 밖에 없다.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태도를 수정해 상호사찰이 실현된다면 북한과 주변국가 및 남북의 관계는 급진전 하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은 한중수교가 북한에 경계심을 유발시키고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입지약화를 막기 위해 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중심으로 하는 남북대화는 유지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요컨대 한중수교는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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