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검문없는 일본의 공공기관(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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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방위청 장관실 부담없이 출입/신분증 요구않고 위병소선 친절히 안내/후라노시 경찰서선 보초까지 “추방”
얼마전 일본 방위청에 간적이 있다. 미야시타 소헤이(궁하창평) 방위청장관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반회사 보다도 정문을 통과하기가 훨씬 쉬었다. 기자가 차를 몰고 방위청 정문을 들어섰으나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정문에서 위병이 가로막고 나서 신분증을 보자고 할줄 알았으나 그는 위병소안에서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 머뭇거리고 기다렸더니 뒤에서 다른 차가 클랙슨을 울리며 재촉해 할 수 없이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리긴 했으나 그냥 장관실로 가지 않고 위병소를 찾아 정문으로 되돌아갔다.
방문목적을 얘기했더니 위병이 종이를 주며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했다. 시키는대로 하자 그는 방문차량 주차증을 내줬다. 가슴에 붙이는 방문패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위병소옆 게시판의 방위청 안내도를 보고 30여m쯤 걸어 장관실이 있는 건물을 찾아갔다.
그런데 청사현관 수위실에는 있어야 할 수위나 위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또 두리번거리며 찾았더니 밖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던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그 사람이 수위였다. 장관을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2층으로 올라가라고만 할뿐 그는 누구냐고 묻거나 신분증을 보자고도 하지 않았다.
일본 방위청은 우리의 국방부다. 일반관청을 들어갈때도 어디서나 항상 신분증을 보여야 하고 딱딱거리는 수위들에게 익숙해진 탓에 이같은 일본방위청의 모습이 오히려 어딘가 이상하게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방부처럼 권력이 있고 비밀이 많은 곳을 들어가려면 얼마나 복잡하고 딱딱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말을 안해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이처럼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곳은 방위청뿐만이 아니다. 매일 회사를 출근할 때마다 기자는 이치가야(시곡) 육상자위대앞을 지나간다. 이 부대의 보초는 총도 없이 보초를 서고 있다.
이에 대해 방위청 관계자는 『자위대 존재에 관해 위헌이니 뭐니 말이 많고 자위대 모집에 애를 먹고 있으므로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안주고 부드럽게 보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또 매년 겨울 홋카이도(북해도)에서 열리는 눈축제의 장소는 자위대 연병장이다. 국민을 위해 보안을 팽개친채(?) 눈축제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홋카이도의 후라노(부량야)시 경찰서에는 아예 정문에 보초가 없다. 경찰이 갖는 딱딱한 인상을 지우기 위해서란다. 서장실도 우리처럼 범인이 범접하기 힘든 2층에 있지않다. 1층의 일반경찰 민원실 바로 옆에 붙어있어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다.
후라노 경찰서장은 이에 대해 『우리도 과거에는 그랬는데 전후 이렇게 바뀌었다』며 웃었다. 우리는 과거 일제의 못된 잔재만 배우고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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