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개원 정략대상일 수 없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계가 벌써부터 대선마비증에 걸린 것 같아 걱정스럽다. 말로는 선거운동 자제를 내세우면서도 한 김씨가 전방행을 하는가 하면 다른 김씨는 지방행을 하는 등 선거풍이 빠르게 일고 있다.
새 국회를 빨리 열라는 여론이 빗발치는데도 대선정국의 고지를 노리는 여야 정략대결은 완화되는 기미가 없다. 개원협상은 지지부진하고 여야간에 오고 가는 말들은 과거보다 조금도 나아진게 없다. 개원문제에서부터 대선마비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기문제를 개원의 조건으로 삼는데는 찬성할 수 없다. 여당편을 들어서도 아니고 단체장선거문제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개원을 하고나서도 단체장문제는 얼마든지 따지고 협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야당이 굳이 이 문제를 등원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국가3부의 하나인 국회를 일정기간 사실상 부재상태로 몰고가는 것은 사리에도 안맞고 국민지지경쟁에서도 불리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김대중씨는 강경·과격이 아닌 온건·합리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애쓴다고 들리는데 민주당의 이런 연계작전은 온건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못하다.
우리는 김씨가 부산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지 않기위해 호남에서 옥외유세를 하지 않겠으며,장차 재산공개를 할 것이라고 발언한데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87년 대선에서 보았듯이 경쟁적인 대규모 옥외집회가 갖는 낭비와 지역감정 악화의 위험성은 누구나 걱정하던 터였다. 그로서는 가장 믿을 만한 세과시장이 될 호남유세를 자제하겠다는 것은 그런 국민적 우려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는 부산발언에서 보인 김씨의 이런 새로운 면모가 개원협상에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개원에 조건을 붙여 혹시 얻어낼 정치적 이득이 있을지 모르나 그런데 연연치 않고 무조건 국회 문을 열어놓겠다는 단안을 내려주기 바란다. 일부에서 보는 것처럼 국회상임위원장 몇석을 더 얻기 위해 협상을 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정권이 오고가는 큰 선거가 걸린 판에 그까짓 상임위원장 몇석이 대수로울 리가 없겠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정국은 두 김씨가 주도하는 정국이다. 두 김씨가 개원과 같은 정략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를 두고 오래 질질 끌면 국민으로부터 쏟아질 말은 뻔하다. 역시 겉다르고 속다르구나 하는 말이 안나올리 없고 다시 양김 퇴진론·세대교체론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 김씨 정도의 정치경륜을 가진 분들이 이런 뻔한 코스를 모르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선거운동을 할 때 당당하고 화끈하게 하더라도 지금부터 정계를 대선마비증에 걸리게 해서는 안된다. 개원문제에 관한 새로운 접근이 있기를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