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고객은 학생 아닌 기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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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27면

최근 여러 대학이 교수 출신보다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나 행정부처의 장을 지낸 분들을 대학 총장으로 영입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대학이 이분들을 초빙하는 목적은 단순히 이들의 인맥을 활용, 모금을 확대해 학교 재정을 튼튼히 하려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대학도 변화와 혁신을 하지 않고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적임자를 구하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교 졸업생 수보다 대학의 입학 정원이 더 많은 상황이 됐고, 개방의 물결이 어쩔 수 없이 몰려오는 판국이 됐으니 대학도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필자가 대학 총장이 된 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대학경영과 기업경영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질문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서로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본질적으로 한쪽은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이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 그러나 영리조직이든 비영리조직이든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주어진 가용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경영의 원리 면에서 보면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얼마 전 우리 학교에 미국 경영교육품질인증을 받기 위해 멘토(mentor)로 온 파리 경영대학원장이 필자에게 학교의 고객이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대학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서비스한다는 측면을 고려해 학생이 고객이라고 답을 했더니 틀렸다는 것이었다. 왜 학생이 고객이냐는 것이었다. 학교는 학생을 잘 교육해 기업이나 행정부 등 수요자에게 공급하게 되는 것이므로 학생은 생산제품(Product)이고 기업이 고객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기업이 제품이나 용역을 생산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듯 대학은 학생들을 소비자인 기업의 요구에 맞도록 교육해 공급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었다. 졸업생이 대학의 생산제품이라면 신입생은 원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학들은 현재의 변별력이 부족한 입시제도하에서 질 좋은 다양한 원료를 골라보려는 처절한 노력들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청년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는 상황에서 품질 좋은 인재를 공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국내 시장이 좁아서 취업이 안 되면 해외에서라도 취업이 될 수 있는 국제적 인재를 길러내는 것도 대학의 몫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기업이 생산제품들을 좁은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생산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 학생들도 이제는 해외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력을 갖추고 취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취업한 정보기술(IT) 인력에 인도 사람이 많은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또 인도의 벵갈루루에 해외 IT기업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미국 기업들의 대한(對韓) 투자가 늘어날 것이고 이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는 일을 우리 대학이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대학의 인재양성 시스템이 경쟁력이 있는 시스템인가.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대학이 과연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우리 대학 스스로 많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기업처럼 효율적으로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위해 피나는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물론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대학을 둘러싼 환경조건의 개선도 시급하다. 자율과 경쟁이 있는 곳에 창의와 발전이 있을 수 있다. 외국의 대학과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경쟁조건들을 갖추어 주는 것은 특별히 돈이 들지 않고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학들이 각종 규제를 풀고 자율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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