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덕에 뜨고 PS 탓에 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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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003년 5월 13일, 미 LA에 있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 스튜디오. '플레이스테이션(PS)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다라기 겐(久多良木健.57.사진) SCE 최고경연자가 세계 최대 게임쇼 E3에 참석한 수백명의 기자들에게 자신있게 말했다.

"PS는 수억 명이 이용하고 있다. 또 앞으로 선보일 PS3는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라 각종 기기를 제어하는 홈 네트워크의 핵심 단말기가 될 것이다." 당시 사내에서 게임에 관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모회사 소니의 최고경영자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히 PS사업을 이끌 것처럼 보였던 그는 오는 6월 최고경영자(CEO)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난다. 공교롭게도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준 바로 그 PS 때문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구다라기는 1995년 PS1을 선보인 뒤 2000년 내놓은 PS2의 연속적인 성공으로 소니의 총아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야심차게 내놓은 새로운 게임기 PS3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한 달 뒤인 12월 출시된 닌텐도의 게임기 위(Wii)에 밀리며 부진을 면치 못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올 3월 위는 210만대 팔렸지만, 같은 기간 PS3는 86만대에 그쳤다. 닌텐도는 올해 판매 목표를 당초 584만대에서 1400만대로 늘렸다.

반면 소니는 PS3개발비 부담과 판매부진으로 2007회계연도(올해 4월~내년 3월)에 2000억엔의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위의 인기는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 덕분. 위가 대당 250달러인데 비해 PS3는 600달러로 고가다. 여기에 게임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고 다른 기기까지 조종할 수 있는 원격조정 기능이 위의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구다라기를 물러나게 한 위의 인기가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을 지 의문도 제기된다. 소니가 구다라기 퇴진 등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고 풍부한 게임 타이틀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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