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 돌출행동막기 “속죄양”/청와대정무수석 경질 배경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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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외·변칙선거운동 제재 명분확보 겨냥/훼손된 노 대통령 자유경선의지 재정립
노태우대통령이 6일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돌연 교체한 것은 진행중인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려는 강한 의도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종찬후보가 대통령의 의중을 왜곡 전파했다는 이유로 손주환정무수석비서관의 해임을 강력 요청하면서 변칙적 장외투쟁을 하고 있는데 대한 대응책으로 손 수석을 일단 해임한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민자당 경선정국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며 김영삼·이종찬 두 후보 진영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이날 해임된 손 수석은 이 후보의 집요한 「노심 왜곡전파 주장」이 사실이야 어떠하든간에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 및 자유경선의도에 큰 부담을 안겨줬다고 판단,지난 2일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측은 이 후보측이 판세열세 뒤집기를 위해 야당인사 이상의 사생결단식으로 나오고 있는데 대해 몹시 곤혹감을 느껴왔다. 이 후보가 노 대통령에게 직접 비수를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의 손 수석인책론을 제기하자 청와대측은 이 후보의 의도를 다각적으로 탐색·검토했다.
그 결과 청와대측은 최악의 경우에 대한 이 후보의 행동에 두가지 상반된 선택을 예측했다. 첫째는 원내 지지세력이 약한 이 후보가 탈당은 못할 것이며 당내 비주류로 공세를 취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비교적 낙관론이다.
둘째는 이 후보가 대중적 인기를 무기삼아 민자당에 큰 상처를 내고 탈당해 여권을 양분하는 최악의 비관론이다.
따라서 손 수석을 속죄양으로 해임한 청와대측의 의도는 이 후보가 세불리를 최종적으로 인식,최악의 선택을 할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려한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의 돌출행동에 명분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의 심모원려라는 말이다.
이와 함께 이 후보의 핵심적 주장 하나를 수용함으로써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훼손된 노 대통령의 자유경선의지를 다시 바로잡아 보이는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향후 경선국면의 변칙·불법 선거운동양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당총재로서의 권한을 명시적으로 유보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관측된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손 수석 해임은 ▲자유경선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고 ▲이 후보의 돌출행동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며 ▲아울러 변칙·불법선거운동을 제재할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다목적용이라 하겠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손 수석해임이 몰고올 여러 파장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통령의 정무수석 교체가 자칫 이 후보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측은 노 대통령의 본심은 그런게 아니었는데 손 수석등 일부 측근이 이를 왜곡 전파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은 조치라고 역공하는 호재로 활용할 것이라는데 청와대측의 고민이 있다. 이 후보 부인 윤장순씨가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를 만난후 『노심은 그런게 아니었다』고 선전한 예를 보면 이 후보측이 이를 최대한 선전에 활용할 것은 불보듯 훤하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특히 대통령은 이번 조처를 통해 깨끗한 자유경선의 장을 여는데 본뜻이 있는데 세불리한 이 후보측이 이를 빌미로 더 세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의 참뜻이 엉뚱하게 다른 방향으로 왜곡되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자칫 판세가 뒤틀리게 되는 사태가 오면 김 후보측의 돌발행동이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번 조치를 김·이 후보 진영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경선이 경선답게 끝나든가,아니면 괴상한 형태의 경선으로 한층 변질돼 경선의미를 퇴색시키면서 민자당정권 재창출을 어둡게 할지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양 진영 수뇌부와 당원로 및 선관위원장 등을 불러 이러한 불가측의 사태가 발생치않도록 진지한 협조의 당부와 함께 강한 경고를 하는 대비책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의도를 어떻게 꿰뚫고 임하느냐는 새로운 과제가 김·이 두 후보 진영에 떨어진 셈이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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