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외화에 밀리고 직배에 울고-영화사 67%가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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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관객의 불신과 외화의 공세로 중병의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한국 영화의 회생책은 무엇인가. 영화인들은 깊은 좌절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어쨌든 영화 제작을 열심히 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 처한 한국 영화계의 현황과 그 원인, 그리고 처방을 제작·시나리오·연출·기술·배급·극장·심의·영화 정책·해외 시장 개척 등 영화를 둘러싼 전반을 살펴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 영화계는 첨단의 고층 빌딩 숲 사이에서 숨차하는 협궤의 증기 열차를 연상케 한다.
기관사는 피곤에 지쳐 있다. 텅 빈 객실에는 역시 피로에 젖은 승객 몇몇만이 졸뿐이다.
내뿜는 연기는 매연이라고 눈총 사납고, 이따금 울리는 기적은 자기 존재에 대한 구슬픈 확인처럼 들린다.
70년대 이후 외화에 밀리고 미 직배 영화 강타에 흔들린지 4년.
영화배우는 이제 대중의 우상 자리에서 밀려난지 오래다. 대부분의 영화 종사자들은 생계를 꾸리기에도 허덕인다. 당연히 그들의 긍지조차 퇴색하고 말았다.
몇곳을 빼고는 영화 업체는 여전히 슈퍼마켓 수준을 맴돌고 있다. 변두리 극장들은 아직도 비행지대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관객들 또한 청소년층이나 데이트족이 차지, 「영화 문화」의 소비 쪽을 담당하기엔 아직 멀었다.
한국 영화는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 전신 불구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영화계의 영세성은 어느 정도일까. 90년 방·외화 관람 수입금은 총 1천4백억원 가량. 여기서 제작비·수입비·광고비·문예진흥기금·부가세 등을 빼면 약 3백80억원이 남는다.
이중 극장이 1백10억원, 미 직배사가 1백50억원 가량을 가져가면 영화사에는 결국 1백10억원 정도가 남게 된다.
등록된 1백5개 영화사와 독립 PD 16개 사의 총수입금인 셈인데 이 돈으로 회사를 꾸리고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업 협동조합은 현재 1백5개 사 중 10여개 사는 흑자, 20여개 사는 현상 유지, 나머지 70개 사 정도는 도산 운명에 처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미 직배사는 서울 도심의 중심관마저 장악, 수입금의 40% 가량을 가져감으로써 마치 사막과 같은 영화계의 몇 안 되는 오아시스를 점령한 이방군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 영화제작 계는 붕괴 직전의 상황이다. 그러나 붕괴는 현상황의 소멸임과 동시에 새 출발을 뜻하고 있다.
밝은 미래를 담보하는 개편의 방향은 분명하다. 그것은 누누이 지적돼왔듯이 영화가 갖는 동전의 양면, 곧 예술과 산업의 조화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감동을 동반한 상업적 재미」라는 말로 대체할 수도 있다.
예술성 또는 영화적 재미는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연출하는 영화인들이 시대를 파악하는 성찰력이 갖춰질 때 가능한 것이다.
현재 한국 영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멜러 영화처럼 한국과 한국인을 멜러식으로만 취급하면 한국 영화는 현실과 유리된 채 겉도는 2류 대중 매체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고 관객 저변 층의 확대는커녕 그 나마의 관객들 조차로부터도 외면을 자초케 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산업성을 이루려면 정확한 통계와 엄격한 검증 작업을 필요로 하는 경영의 과학화가 선결 과제다.
앞서 한국 영화의 영세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90년도 치인 것이 나타내듯 한국 영화계의 통계 수치는 정확성은 고사하고도 신속성에서조차 가치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
영화 시장이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블랙마켓처럼 형성돼 있는 한 미래를 대비하는 영화기획과 영화 제작이 이뤄지리라고 보는 것은 산에 가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일이 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영화 정책도 이제는 완전히 탈바꿈해야 된다는 것이 영화계의 한 목소리다.
심의방법의 개선은 물론 영화 보호 또는 통제가 아닌 정말 영화가 진흥될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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