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 판사의 고뇌(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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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합의2부 김학대 부장판사(45)는 17일 온종일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날 아침 개정과 함께 「흉악범」 3명에 대해 극형을 선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원 규모의 법정에서 하루 2건 3명에 대해 한꺼번에 사형을 선고한 것은 처음일 겁니다.』
김판사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기로한 흉악범은 빠찡꼬로 아파트등 가산을 탕진하고 이러한 고민을 몰라준다며 낮잠을 자고있던 부인(36)·아들(9·국교3)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유만봉(37),정부와 짜고 강도로 위장해 병든 남편을 살해한 곽도화(30·여),곽씨의 정부 오숭관(30) 피고인 등 3명.
『세계적으로 사형선고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납득하기 힘든 동기로 아내·아들을 살해한다거나 치밀한 계획아래 병든 남편을 죽인 부인·정부 등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김판사는 선고에 앞서 먼저 세 피고인에게 사형이 구형된데 대해 억울함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곽·오 피고인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고 유피고인은 검찰이 공소장에서 자신의 여자관계를 명시했고 재판부가 이를 인정한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등 후회의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곽피고인의 경우 두자녀의 어머니라 아이들이 졸지에 고아가 돼버리는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자신들의 아버지를 버리고 외간남자와 치밀한 계획아래 머뭇거리는 정부를 재촉해 끝내 찌르게 한 어머니와 계속 생활해야 한다는 것도 교육상 결코 좋지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어요.』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중견법관의 고뇌에 찬 얼굴에 팬 엷은 주름살이 이날따라 더욱 깊어보였다.<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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