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서둘러 될일 아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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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회의를 주재하러 북경에 간 이상옥 외무장관에 대해 회의활동보다는 중국 지도자들과의 접촉등 막후외교활동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과의 수교등 관계증진을 기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관심이다.
아태지역경제사회이사회(ESCAP)같은 국제회의의 각료급 정부대표가 회의 개최국 지도자들을 만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지만 이번의 경우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두나라간의 관계는 물론 한반도문제와 관련해 서로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밀접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면서도 적절한 수준의 대화통로가 드물었던 참에 외무장관이 중국의 외교부장과 총리를 만났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더구나 이붕 중국 총리가 두나라는 「접촉을 확대하고 지도자도 직접 접촉해야 한다」고 말한 것 역시 좋은 일이다.
한반도 안정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한중관계에 비추어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관계가 정상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 총리가 접촉확대의 필요성을 말한 것은 고무적이나 너무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급격한 관계개선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확대해석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제반 여건이나 중국 외교의 관행과 특성으로 보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서두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는 항상 자기네 정치적·전략적 계산에 따라 전개되어 왔다. 특히 미수교국과 공식관계를 맺을 경우 느릿느릿하고 어느면에서는 경직된 면이 두드러졌던게 사실이다. 어느 나라가 자기네 필요에 따라 관계개선과 접촉확대를 열망하고 채근한다 해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한 중국 외교의 특성은 특히 우리와의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는 우리와의 관계보다는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공산주의체제를 고수하면서 외부세계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두 나라는 정치적·도덕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는 관계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면 저자세라는 인상까지 주어가며 중국의 구미에만 맞게 행동하며 수교를 바라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옛날 소련등 공산국가들을 상대로 북방외교를 벌이던 시기와는 여건이 다르다.
국교가 없는 중국과의 관계도 약간의 불편은 있을지 몰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외교접촉 통로는 열려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특정 정권이나 특정시기에 집착해 중국과의 수교를 서두를 일이 아니다.
중국과의 수교문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대만과의 관계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큰 비중이 있는 대만을 포기하는 식으로 해선 안되고,대만과의 관계도 어느 형식으로든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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