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딸과 대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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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집 근처에 대학이 자리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밝고 활기찬 모습을 늘 접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밝음과 활기참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책과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시간의 축적의 산물이란 것에 생각이 미치면 진한 연민이 밀려온다.
며칠 전 식탁에서 식사 후 과일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난 예기치 못한 사태에 직면했다.
딸아이와 나는 작은 토론을 벌이게 되었고「이것이나 저것이나 결국 마찬가지」라는 내 말에 딸아이는 곧 반박을 하고 나섰다.
이것은 이러 이러하고, 저것은 저러저러한데 어째서 똑 같으냐며 딸아이는 논리적으로 따져든다. 듣고 보니 딸애의 말이 옳기에 『그래, 그래 맞다. 우리 승은이 참 똑똑하다』며 곧 항복했다.
그러니까 딸은 양팔을 들어올리며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곧 이어 『에헴, 저 이만 하면 대학 들어 갈 만 하죠』 하며 대학 얘기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겨우 10세 밖에 안 된 딸아이 입에서 대학입학얘기가 나오다니. 『어린애에게 얼마나 압박감을 주었으면 저러느냐』 는 남편의 말에 『맞아요, 맞아』 라며 가슴속으로 대답하고는 금세 젖은 눈으로 딸아이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서글픔과 연민이 넘쳐 곧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으나 참아내며 망연히 초점 흐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아이를 저렇게 만들었는가. 친정 어머니 말씀처럼 여섯 살 아들 장가보낼 일도 걱정할 성격이라서 미리 염려해 조금씩 대학 합격을 주입시키고 있진 않았는가.
유난히 길었던 그 밤,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들을 많이 반성하며 특별히 조심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딸애가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그 때에 과연 나는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경기도 안양시 안양5동618의113호 수정빌라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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