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의 일어 선택과목 제외 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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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2일 서울대학교의 94학년도 입시요강이 발표되자 지금까지 결정을 유보해 오던 13개 대학도 서둘러 결정, 본고사제도로 돌아간 대학은 모두 40개가 되었다.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혹시나」하고 기대하여 왔던 결과는「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오늘의 사회적 상황이 14년 전 망국 과외의 열병에서 학력고사라는 입시제도를 창출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비교할 때 그같은 병폐의 재연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대학이 운영의 자율권을 신장하고 그 선발 시험에서 보다 수월성을 추구하여 대학의 질을 높이고, 더 나아가 국제화시대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대학입시제도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파장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데 있다. 흔히 오늘의 세태를 지역이기주의니, 집단이기주의니 하고 평가하는데 개정된 입시요강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대학이기주의를 목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서울대 입시요강에서 인문계열의 선택과목이 제 2외국어(독·불·중·서)와 한문 중1과목으로 발표되었으니, 일본어를 제 2외국어로 선택하여온 학교(전국9백 42개교)나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한문을 선택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제 2외국어도 아니고 또 선택의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결국 일본어를 학습하여온 학생들에게는 한문과목이 필수로 귀결되거나, 아니면 제2외국어를 다시 조정하여 새롭게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행보 빠르게 1, 2학년의 보충수업은 국·영·수로 채워지고 사회과목이나 실업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수업 경시풍조가 각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어 담당교사들 사이에 허탈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사회적 다원주의가 부정되고 학문의 독립적 영역이 실종된, 교육과정 자체가 무시된 그러한 발상들로 입시제도를 결정짓는 것에 대해 참으로 두렵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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