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의 충고와 법원의 자정/남정호 사회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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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한변협이 6일 법관부조리 폭로파문과 관련,변호사들의 설문내용을 언론에 흘린 변협 공보이사를 사퇴시킴으로써 변협과 법원간의 감정싸움이 일단락됐다.
변협은 이번 발표가 자신들의 공식의견이 아니라며 법원에 특사까지 보내 사과의 뜻을 밝힘으로써 백기를 든 셈이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이번 사태를 접하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었다. 한 법관은 『정작 법원의 물을 흐려놓은 장본인인 변호사들이 도덕성문제로 판사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눴다는데 대해 일말의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변협이 설문지 공개과정의 잘못을 사과했다고 해서 법원부조리 폭로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설문에 응한 변호사의 반수이상이 판·검사를 지내다 법복을 갓벗은 변호사들에게 특혜를 주는 전관예우의 폐해를 꼬집고 있다.
『서울지법 모판사는 사법연수원생출신 변호사가 보석신청을 냈더니 불허했다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다시 신청하니 변경사안이 없는데도 이를 받아주었다.』
『횡단보도 3주상해 교통사고에 대해 합의가 안됐다는 이유로 보석신청을 기각하면서 부장판사를 지내고 막 개업한 변호사의 경우 횡단보도 6주상해를 합의가 안됐는데도 보석을 허가했다』등등.
이 때문에 법원 일각에서는 이번 설문지에 나타난 불만의 대부분이 주로 연수원을 갓 나와 개업한 변호사들의 「불만표시」라고 보고 있다. 경험부족 탓에 노련한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에 비해 사산건의뢰인도 적고 능력이 떨어지는 신참변호사들의 화풀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법원의 생리에 익숙한 1백여명 이상의 변호사가 법원의 부조리에 대해 입을 모으고 있다면 소수 불만집단의 볼멘소리로만 보아넘길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법률전문지식과 윤리관을 갖춘 변호사들인지라 자신의 미숙에서 비롯된 사안인지,아니면 불공정한 관행에 의한 차별대우인지는 구별할줄 아는 안목이 있을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조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번 변협의 부조리 지적에 상당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법부독립의 원칙」에 따라 견제기관이 따로 없는 법원으로서는 자정으로 잘못된 관행을 고칠 수 밖에 없고 자정을 위해서는 감정에 치우치기 앞서 겸허하게 남의 말을 경청하는 법관의 기본덕목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한식구나 다름없는 변호사들의 충고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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