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민 1.5 세대의 삶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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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이었지만 영어가 서툴렀던 나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쫓겨나고야 말았다. 평소 한국에서 머리 좋고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민 1.5세대 작가 수키 킴의 소설 '통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재미교포 학생 조승희(23)씨가 치정에 의해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 난사를 한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이민 1.5세대들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에 이민 간 세대가 1세대이고, 이민 가서 낳은 세대가 2세대라면 1.5세대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낀 세대. 조씨도 초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1.5세대다.

미국의 한인 1.5세대 가운데는 조씨처럼 유학생들과도 어울리지 못할 만큼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고 미국 주류 사회로의 진입은 꿈도 못 꾸는 부류가 있는 반면, 이를 오히려 예술적 삶으로 승화시켜 스타가 된 사람들도 있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1.5세대로는, 13세 때 뉴욕으로 건너간 소설가 '수키 킴(김숙희)'이 대표적이다. 그는 소설 '통역사'로 펜 문학상, 구스타프 마이어스 우수도서상을 받았다. 미국 굴지의 서점인 반즈 앤드 노블스가 선정한 '올해 주목할 작가 10명' 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사인회와 낭송회를 갖기도 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미국 이민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미국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통역사'라는 소설 제목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부모와 영어만 쓰는 미국 사회를 이어주는 1.5 세대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밖에도 창래 리, 카니 강, 노라 옥자 켈러, 김정복 등이 부모세대의 고생스러웠던 이민생활과 작가 자신의 과거 기억을 토대로 소설을 발표해 미국 주류 문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한 1980~90년대는 작품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여줘 '한국계 미국인 문학의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들이 미국 주류사회의 스타가 되기는 했지만 그 분야가 '예술'에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우리 1.5세대의 현실이기도 하다.

한편 조씨처럼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민 1.5세대들은 유학생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유학생들은 동문회와 학생회 형식으로 서로 연락하면서 일정한 유대관계는 맺고 있다. 하지만 조씨와 같은 1.5세대 미국 영주권자의 경우 이들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 유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 때문에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1.5세대들이 부모들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혼란을 겪는다는 분석도 있다. 세탁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오로지 자녀의 성공만을 바라는 부모의 기대, 세계에서 알아주는 지나친 교육열 등 한국인들의 독특한 문화가 자녀들을 스트레스의 늪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다민족이 더불어 사는 미국에서 '1등만 하면 된다'는 식의 강요 때문에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간다는 게 현지인들의 분석이다.

1.5세대는 중.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닌 세대다. 한국에서는 초.중학교 과정만 마쳤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과 괴리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정신적 갈등과 가치관이나 주체성의 혼란에 시달린다.

이들은 이중 언어와 문화를 경험한 징검다리 세대다. 이민 1세와 2세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어느쪽에도 마음 편하게 발을 붙일 수 없어 고민하는 '낀 세대'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1.5세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면서 "문화의 단절로 인해 잃어버린 경험과 시간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로 미국 이민 102년째를 맞지만, 1.5세대들은 고국은 물론 이민 1세대나 미국에서 출생한 2, 3 세대들도 이해할 수 없는 남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미국 사회에 어렵사리 적응하지만 미국인들과 문화적.정신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외감만 키워가다가 결국'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 혼란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민 1.5세대인 조씨의 고민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야만적 분노로 표출되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경계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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