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걱정”말은 그럴듯…/이상일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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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 오후 2시 경남 울산시 반구2동 국민당 경남도지부건물 2층 당원교육장. 주부당원 80여명과 남성당원 20여명등 1백여명이 자리를 잡았다.
출석표,정주영 대표의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만화 『거인 정주영』,그리고 입당원서 10장이 든 큼지막한 봉투가 하나씩 참석자들에게 주어졌다.
잠시 유행가요 합창 등으로 분위기를 푼 다음 당의 울산시 공천자들과 당료들의 교육이 시작됐다.
『나라의 경제가 망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런데도 민자당은 경제걱정은 하지 않고 기업을 탄압하는등 오히려 경제를 무너뜨리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에 대한 비난이 한동안 계속되다 정대표의 국민당창당 배경설명으로 이어졌다.
『아무 부러울게 없는 그분이 무엇때문에 욕까지 들어가며 가시밭길을 걷기로 했는지 아십니까. 오직 나라경제를 구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구국의 일념때문에서였습니다.』
『소비재산업에 투자하지 않고 정치적 이권에 관계하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돈을 번 그분은 이제 기존 정당의 권위주의를 일소하고 정당의 사당화·지역정당화를 배제하는등 정치쇄신에 여생을 바칠 생각이십니다.』
정대표에 대한 미화일색의 교육은 「현대그룹과 울산」이란 주제로 이어진뒤 끝을 맺었다.
『현대에 대한 탄압이 계속돼 기업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현대의 매출이 8조원이나 되는 울산에서 현대가 흔들리면 지역경제가 어떻게 될지 잘 아실겁니다. 여러분들은 이 점을 잘 홍보하여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특히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당원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두시간동안 위기의식을 주입하는 이 교육이 상당히 「효과적」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납품업체 사장이라고만 밝힌 40대 남자당원이 출석표를 낸뒤 교육장을 떠나면서 속삭인 소감을 듣고 기자는 땡감씹은 뒷맛처럼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모였는지 아십니까. 거의 대부분이 미리 출석일을 지정받아 나온 것입니다. 기업을 살리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없앤다면서 한창 바쁜 시간에 내용이 뻔한 교육을 받으라는 것은 생업에 지장을 주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이 아닙니까.』<울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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