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와 정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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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가 보통 희극이라 부르는 코미디는 BC486년부터 그리스에서 주신 디오니소스제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을뿐 그 기원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학』에서조차 『그 기원은 알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다만 희극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Komoidia가 「주연」을 뜻하는 Komos와 「노래」를 뜻하는 Oide의 합성어에서 유래됐으리라는 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구의 연극사학자들은 희극이 비극을 바탕으로 출발했고,그 바탕위에서 발달해 왔음은 분명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여왔다. 즉 희극과 비극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같은 맥락에서 파악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비극이 서사시적 전설이나 신화에서 취재된 것임에 비해 희극은 현실의 여러가지 상황에서 소재를 구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희극의 소재가 현실상황에서 얻어졌다는 사실은 초창기의 희극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현실상황 가운데서도 정치에 대한 비판,정치풍자가 중심을 이뤘음은 의미심장한 느낌을 준다.
그리스 최대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BC 448?∼380?)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로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혐오했던 그는 도덕적 세계로의 지향을 모색하면서 정치가의 야심적 이기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가 남긴 11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그같은 그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는 여전히 코미디의 중요한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정치적으로 선진화된 사회일수록 정치풍자 코미디에 대한 인기가 높고,그 영향력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없으면 코미디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우리나라는 예외다. 적어도 5공때까지만 해도 정치코미디는 금기였다. 그것 하나만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얼마나 경색되고 폐쇄적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6공에 접어들면서 정치코미디가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연극·TV뿐만 아니라 글,그림으로…. 그것만으로 민주화시대가 도래했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어쩐 일인지 정치코미디가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더니 정계진출설이 있던 한 코미디언이 압력을 받아 출국했느니,어쩌느니 시끄럽다. 과연 코미디와 정치는 협력자 관계인가,적대관계인가.<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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