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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기술' 개발만이 살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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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얼마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일본.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돼 앞으로 이익을 창출하기 매우 어렵게 될 것이란 위기론이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산업계는 물론 학계에서 새로운 기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징후를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견제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이루어낸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이나 곧 따라올 수 있는 기술은 전망이 없다. 일본이 충분히 앞서 있는 분야나 기술도 가망이 없을 것이다. 오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 일본의 경제력.기술력.추동력은 우리가 전속력으로 질주해도 따라잡기 힘들다. 더구나 지금처럼 우리나라 이공계가 기술 개발 추진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황에선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이제는 융합기술과 이를 이용한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융합기술이란 기존의 여러 기술을 복합.응용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몸속에 들어가 필요한 부위를 수술하는 아주 작은 로봇을 생각해 보자. 이런 로봇을 만들기 위해선 기존의 기계.전자.소재 기술은 물론 최근 각광받고 있는 나노.바이오.정보기술 등이 모두 어우러져야 한다. 문화적 요소가 통합돼 수술하는 의사와 교감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더욱 경쟁력 있는 의료용 로봇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우리 주변 제품에 융합기술을 적용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구현할 수 있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자동차의 경우 정보기술을 적용해 무인 주행.주차를 가능하게 하거나 바이오 기술로 운전자의 심신.기분 상태를 파악해 경고하는 것 등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자동차는 일본이 앞서 있는 자동차 분야를 따라잡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융합기술을 이용한 제품으로 우리가 당면한 샌드위치 신세를 탈피하는 전략은 다음과 같이 비유될 수 있다. 한국.일본.중국이 1000m 달리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일본이 300m쯤 앞서 있을 때 한국이 출발하고, 한국이 300m쯤 달리고 나서 중국이 출발했다 치자. 그런데 일본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중국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황이다. 상황을 반전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훨씬 잘 뛰는 선수로 바꾸는 것이다. 전통 기술이란 선수를 융합기술이란 새로운 선수로 교체하자는 것이다. 물론 일본.중국이 새로운 선수로 교체하기 전에 종착점에 도착해야 한다. 그만큼 선수 교체가 시급한 시점이다.

이런 때 경기도와 서울대가 손을 잡고 나노.바이오.정보기술.자동차.로봇 등 최첨단 기술을 융합기술로 개발하는 연건평 1만9000여 평 규모의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 건물을 내년 2월 입주 목표로 수원에 신축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대학과 지자체가 상호 협력해 이루어낸 윈-윈 전략이다. 다른 많은 지자체와 대학도 이 같은 협력 관계를 많이 만들어 가길 바란다.

이건우 서울대 공대 차세대·융합기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