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묘수를 꿈꾼다. 직장인이든 기업인이든 가끔씩 묘수를 상상하며 절실히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손꼽는 진짜 묘수들은 의외로 덤덤하고 화려함도 없다. 욕망을 절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모습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에 반해 하위의 묘수들은 생사를 단칼에 결정짓는 날카로움이 돋보인다.
<국수전 도전 4국>백 윤준상 6단 - 흑 이창호 9단국수전>
이창호 9단을 3대1로 꺾고 10번째 국수의 자리에 오른 윤준상 6단에게 '국수를 만들어 준 한 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가 머뭇거리며 지목한 수는 바로 백1의 날일자 수다. 결승전 제4국의 116번째 수. 얼핏 보면 밋밋하고 종잡을 수 없는 수였으나 그는 이 한 수가 팽팽한 대치상태를 깨뜨리고 백에게 불계승을 안겨준 자랑하고 싶은 한 수라고 말한다. 이 수는 A의 봉쇄, B의 절단 가능성, C의 중앙 울타리 등을 다목적으로 엿보고 있지만 겉모습은 극히 평범하다.
이적의 수 정중앙 포석 … 서서히 상대 제압
일본 바둑이 역사상 최고의 묘수로 꼽는 '이적(耳赤)의 수'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도면의 흑1이 본인방가의 천재 수샤쿠(秀策)가 둔 문제의 수인데 이 수가 놓이자 당대 최고수였던 상대방 이노우에 인세키(井上因錫)의 귀가 점점 붉어졌다는 일화에서 '이적의 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데 이 수 역시 상대를 격멸하거나 일거에 우위에 서는 그런 수가 아니다. 중앙을 점거하며 은은하게 힘을 펼치고 있지만 겉모습은 역시 평범하고 정체불명이기조차 하다.
하위의 묘수 짜릿한 일격 … 깊은 맛은 좀 …
<세계 최강 모험대결> 백 조훈현 9단 - 흑 spiderman1세계>
인터넷 사이트 타이젬에서 벌이고 있는 '세계 최강 모험대결'중 한판이다. 재미있는 기획이라 내용을 설명하면 조훈현.이창호.유창혁의 '빅3 드림팀'과 타이젬에서 아이디로 바둑을 두는 한.중.일 인기 스타 3인이 대결하는 것인데 그 첫판에 조훈현 9단과 일본 온라인 대표 격인 spiderman1이 맞붙었다. (이창호 9단은 중국의 Goldhammer.유창혁 9단은 한국의 구레나룻걸과 대결. Goldhammer는 중국 최강 신예 저우루이양, 구레나룻걸은 강동윤 6단으로 알려져 있다)
조훈현 9단이 백인데 흑▲들이 3수밖에 없어 수상전이 쉽지 않은 상황. 그러나 흑1이 깨끗한 맥점이어서 백 대마가 잡혔다. A로 끊어도 B로 넘어 흑승. 위의 묘수들보다 훨씬 짜릿하지만 오묘한 바둑세계에서는 이런 정도의 수는 하위의 묘수에 불과하다.
박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