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 궤도진입 입증/EC,유고 2개공 승인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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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회원국의 이해떠나 공감대 형성/미국에 대한 최초의 「외교적 도전」
유럽공동체(EC) 외무장관들이 16일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공화국을 내년 1월15일 공식승인키로 결정한 것은 지난번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열린 EC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공동의 외교정책 수행」을 실행에 옮긴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는 EC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과시한 것으로 유럽통합이 이제 말뿐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본궤도에 진입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유고문제는 그동안 EC의 「뜨거운 감자」였다. 회원국간 이해가 크게 엇갈려 마스트리히트 정상회담에서는 유고사태의 심각성은 공감하면서도 회담성공을 위해 본격적인 토론은 자제하기로 합의했었다.
유고사태에 대한 EC의 시각은 독립을 선언한 두 공화국에 대해 조기승인을 주장하는 독일·이탈리아와 이에 반대하는 영국·프랑스측으로 대별된다.
독일은 자신들이 민족자결원칙에 의거,통일을 이룩한 것처럼 이들 유고의 두 공화국도 민족자결원칙에 따라 독립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독일은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두 공화국에 대한 연내 승인입장을 피력해왔고 이달초에는 두 공화국 대통령들을 공식초청,이같은 입장을 통보했다.
독일은 두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 승인만이 세르비아공화국의 무분별한 군사적 모험을 억제,유고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보는 다른 EC회원국들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그 이유는 바로 통일이후 유럽의 거인으로 등장한 독일이 막강한 경제력과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두 공화국을 독일의 세력권안으로 흡수하려 한다는 의혹이었다.
영국·프랑스가 두 공화국 승인에 반대해온 것은 자국내 소수민족문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거대독일에 대한 두려움과 견제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동안 이토록 팽팽히 맞서던 양측의 입장이 「독립승인」이라는 공통분모를 찾게된 것은 마스트리히트 정상회담을 계기로 EC회원국간 거리가 그만큼 좁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경제공동체는 물론 이제 공동의 외교·안보·사회정책을 수행하는 정치공동체를 건설키로한 EC는 이제 국가이기주의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두 공화국뿐 아니라 EC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하는 모든 공화국에 대한 승인이 유고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는데 회원국간 합의가 이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영국·프랑스가 독일의 독립승인 주장을 받아들인 것은 일단 독일의 외교적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두 공화국에 대한 조기승인 움직임에 최근 공개적으로 반대입장을 표시한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미국에 대한 EC최초의 「외교적 도전」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EC전체의 외교적 성공으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미·EC간 외교적 줄다리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앞으로 EC,나아가 통합유럽·미국의 관계에서 중요한 시험케이스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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