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부시 대통령 임기 내 수교 목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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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1차 회의가 끝났다. 회담 결과에 대해 양측이 다 만족을 표시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에 대해 (북한이) 먼저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다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북.미 수교와 관련, 연락사무소 없이 바로 외교 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 발언의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다.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춰 이번 회담을 풀어본다.

힐 차관보는 "연락사무소는 미.중 관계 개선 때 취했던 성공적 모델"이라며 "그러나 내 생각에는 북한은 그런 견해를 공유하지 않으며,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 곧바로) 외교 관계를 맺고자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북한의 이런 생각은 미국의 전례와는 다른 것이다. 미국은 과거 적대국과 수교할 때는 연락사무소부터 개설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 이듬해 베이징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가 열렸다.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79년이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94년 10월) 역시 북한과 미국이 각각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그 뒤 대사급 관계로 격상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두 달 뒤인 12월 주한미군 헬리콥터가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에 격추되고 96년 북한 군부가 외교 행랑의 판문점 통과에 반대하면서 연락사무소 개설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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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연락사무소 원치 않는 이유=한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북한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임기(2009년 1월) 안에 대미 수교를 달성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94년 제네바 합의 이행 과정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네바 합의 직후 연락사무소 설치를 놓고 고민하다 보류했다고 한다. 평양에 미국의 연락사무소부터 개설되면 '반미'를 근간으로 삼아온 통치체제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회피하는 건 2.13 합의의 초기 60일 조치만 이행해 급한 불을 끈 뒤 더 이상의 비핵화를 거부하려는 속셈이라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한은 쓸모없는 영변 원자로만 폐쇄하고 중유 5만t을 챙긴 뒤 더 이상의 합의 이행을 거부하고 올해 말과 내년 말 한국과 미국의 대선 결과를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비핵화 전제로 가능성 시사=미국은 북한의 속셈이 무엇이건 간에 '비핵화'가 수교의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다. 힐 차관보는 6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원치 않는 점을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의 (대미) 외교 관계는 비핵화 문제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만 제대로 이행한다면 미국도 연락사무소 개설을 생략하고 바로 수교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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