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법적 재산권 제한 “안될 말”/노재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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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대 헌법의 재산권 제한조항은 당시 정권의 특성을 어느정도 시사해 준다.
현행헌법(23조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완전보상주의」다.
1,2공화국 헌법은 「상당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했고,3공화국은 현재와 같으며,5공화국 때는 「보상은 공익 및 관계자의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 법률로 정한다」고 해놓았다. 72년 제정된 유신헌법은 「보상의 기준과 방법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사회주의국가의 헌법이 무색할 정도였다.
31일 열린 국무회의는 이 재산권제한조항에 근거를 둔 「토지수용법 개정안」및 「공공용지의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특례법개정안」등 2건의 법안에 대한 의결을 보류했다.
당초 이 개정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토지수용에 따른 보상금을 채권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했었다. 그러나 법제처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해 「토지소유자가 원할 때」에 한해 채권보상을 하도록 수정,이날 회의에 상정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획원등 경제관련부서에서 지난해만도 6조5천8백억원에 이르는 보상비가 들어 국가의 부담이 너무 무겁다는 점,토지투기 억제효과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부재지주의 농지나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등에 대해서는 채권같은 별도의 보상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채권보상을 받는 이에게 세제혜택을 주자는 의견,채권이자율을 높여주자는 의견등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고 이에 대한 반론도 나왔다. 위헌시비도 재연됐다.
경제정책의 「합목적성」과 「적법성」이 충돌한 끝에 관련부처가 「별도의 보상방안」을 짜내 내주 회의에 상정키로 하고 회의가 끝났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땅값의 지나친 상승과 이에 따른 투기·불로소득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투기꾼은 응징해야 한다』는 국민 누구나의 여론을 업고 행정편의주의가 위헌시비까지 불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짚어봐야 한다.
공공의 이익 역시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지 그것이 옳다고 해서 초월적인 규제를 남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초법적 사고가 결국 다른 형태의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아프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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