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리버테리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올 아카데미의 주인공은 5전6기 끝에 감독상을 받은 마틴 스코세이지다. 할리우드에선 거의 유일한 작가주의 감독에 대한 아카데미의 뒤늦은 경배다.

이번 감독상에서 강력한 적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두 사람은 2005년에도 같은 상을 놓고 경쟁했다. 당시 승자는 이스트우드. 묘한 라이벌이 됐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지지자다. 1988년 스코세이지가 '예수의 마지막 유혹'으로 교계와 일전을 벌일 때 이스트우드는 그를 적극 옹호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믿음 때문이었다.

배우 출신 감독인 이스트우드는 '미국영화의 기적'이라 불리기도 한다. 젊은 날 마초 이미지의 흥행 배우에서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이 됐으니 말이다. 배우로서 출세작은 60~8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 '무법자'와 형사물 '더티 해리'시리즈다. 감독으로서는 서부극의 관습을 비튼 '용서받지 못한 자'(1993)와 안락사를 소재로 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가 대표작이다. 각각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일찍 재능을 소진하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나이 들어갈수록 작품이 깊어진다. 게다가 팔순을 앞둔 지금까지 현역이다.

작가적 행보에 비해 그의 정치 성향은 종종 논란이 됐다. '더티 해리'는 대표적인 우익 파시스트 영화로 맹공받았다. 평생 공화당원이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이스트우드 본인은 이에 대해 스스로를 '리버테리언(libertarian.자유의지론자)'이라고 규정한다. 프랑스의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50년대 군 복무 시절부터 공화당에 표를 던지긴 했지만 나는 어느 정파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리버테리언에 가깝다"고 말했다.

리버테리언은 미국 보수파의 한 지류로 꼽히지만 모호한 측면이 있다. 토종 카우보이 정신에 근거해 미국식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는 한편 좌파와도 어울린다. 미국 좌파의 정신적 지주인 촘스키는 스스로를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자'라 부른다.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는 지난해 경제적 이슈에선 보수지만 개인적 자유에는 진보 성향을 보이는 리버테리언 유권자들이 10~20%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종래의 진보.보수에 묶이지 않는 개념이다. 좌우를 망라해 절대적 자유주의자, 고집 센 개인주의자들이다. 이념 분화 속에 경제적으로는 우, 문화적으로는 좌 편향이 확산돼 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개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