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택/사면초가속 「흥정용」 사찰거부(탈핵시대: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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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 주장 편승… 공군핵 철수요구/미일과 관계개선 봐가며 흥정 속셈
미국이 남한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지상발사 전술핵무기의 철수를 밝힌데 대해 소련도 호응하고 나서 북한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북한은 공군보유 핵까지 없애자는 소련 제안에 찬성하고 나섰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에 머물고 있다.
연형묵 총리의 유엔연설이나 북한 외교부성명은 부시의 지상핵폐기 조치에 대해서는 『남한내 핵무기가 철수되면 핵안전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핵감축 발표후는 즉각 환영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이 부분적 철수가 아니라 해상·공군을 포함한 남조선에 배치된 핵무기의 전면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이 지상발사 전술핵을 철수해도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보호를 받게된다는 미국측의 대한 방위공약을 감안한듯 주한미공군 등 주한미군핵의 완전철수와 북한에 대한 핵불사용선언을 하라는 종래의 입장을 다시 내세운 것이다.
부시의 핵감축선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주시하고 있는 상태에서 소련의 핵감축 발표가 나와 북한으로서는 일단 한숨을 돌렸으나 형편이 근본적으로 개선된건 아니다. 북한의 핵정책은 양면성을 띠고 추진돼 왔다.
우선 대내외 선전공세적인 측면이다. 북한은 지난 60년대부터 ▲주한미군 핵철수 ▲한반도 비핵지대화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밀고왔다.
북한은 6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반핵·평화운동에 편승,이를 한미양국에 대한 비핵정치공세로 연결시킨 것이다.
북한은 76년 8월12일 동경에서 개최된 「한국문제 긴급국제회의」에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최초로 제안한후 지금까지 이를 주장하고 있다.
그후 북한은 84년 1월25일 개최된 제7기3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각국 정부·국회에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비핵지대화 정책의 골격을 만들었다. 즉 미국은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거하고,핵전쟁 연습을 즉시 중지하며,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을 핵무기가 철폐된 비핵·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요구한 것이다.
북한은 이같이 겉으로는 반핵·평화운동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핵개발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핵무기 개발만 해도 북한이 언제부터 시도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64년 김일성대와 김책공대에 핵개발연구부를 설치하는 등 오래전부터 핵무기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같이 양면성을 띠고 추진돼온 북한의 핵정책은 90년대에 들어 대일 수교와 연계되면서 곤혹스러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수교협상 과정에서 핵사찰문제가 예상보다 강하게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일수교에 따른 「배상금」으로 경제난을 돌파하겠다는 북한의 전략은 김정일체제의 출범과도 연계돼 있어 북한으로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생존권」과 연결짓고 있는 핵문제도 중요한 과제다.
이런 상황 때문에 북한이 앞으로 핵사찰문제를 놓고 어떤 수순을 밟을지에 대해서는 상반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관측통들은 남한의 미군핵이 실제로 철수됐다는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지 「공표」되면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북한이 핵사철 거부의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제기해온 주한미군의 핵이 철수되는 마당에 핵사찰을 받으라는 국제적인 압력을 북한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의 핵개발이 일본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내심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중국이 김일성의 북경방문때 핵개발 포기를 종용했다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게 조기 핵사찰 수용논리의 근거다.
그러나 다른 관측통들은 이같은 분석의 틀은 인정하면서도 북한이 핵사찰수용은 상당기간 지체시킬 것으로 보고있다.
즉 핵개발은 북한이 쓸수 있는 유일한 대외흥정카드이기 때문에 대일수교는 물론,대미·대남관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때까지는 그대로 고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점에서 북한이 그들의 핵사찰과 함께 남한에 대한 동시 핵사찰을 들고나오는 점을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북측은 남한에 대한 동시 핵사찰을 주장함으로써 주한미군에 대한 사찰문제도 부각시키면서 시간을 끌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예상되는 북한의 핵사찰 지연전술로 주한미군 철수,대미협상을 통한 평화협정체결 추진 등을 들 수 있다. 소련의 핵감축 정책을 북한은 그런 전술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쓰려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마저 핵감축으로 나오는 상황변화를 보면 북한이 그들의 핵사찰문제를 마냥 늦추기에는 국제적 압력이 너무 큰 것 같다.<끝><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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