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신데렐라 꿈」(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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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화려한 조명아래서 멋진 옷을 입고 여러 사람앞에서 늘씬한 몸매를 뽑낼 수 있는게 모델이잖아요. 어려서부터 전 모델이 되는게 꿈이었어요. 비록 사기를 당했지만 정식으로 모델을 뽑는 대회에 나가면 꼭 합격할 거예요.』
『1차선발 당시만 해도 문화체육관이 꽉찰 정도여서 사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설마 그 많은 사람들이 조사도 안해보고 무조건 돈을 내리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당한 저도 바보지만 저같은 바보가 한두명이 아닌가 보죠.』
모델이 되게 해준다며 선발대회를 열고 참가비·등록비 명목으로 8천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서울경찰청 특수대에 1일 입건된 월간모델 회장 방재환씨(47·사기전과 6범·서울 면목동)에게 당한 피해자의 증언이다.
방씨는 6월초 일간신문에 조그많게 「91모델코리아 선발대회」를 한다고 광고를 냈고 6월30일 문화체육관에는 모델지망생들이 체육관을 꽉 메울 정도로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여대생·간호사·여행사 직원….
방씨는 이들로부터 참가비 명목으로 3만원,함께온 가족들에게는 경품권 비용으로 1만원을 받아 간단하게 5천여만원을 챙겼다.
『선발대회를 TV중계까지 한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동네교회의 연극무대만도 못할 지경이었어요. 의심이 들긴했지만….』
그러나 이같은 의심은 3천명의 참가자중 50명만이 합격했고 그중 한명이 당선이라는 주최측의 얘기에 봄눈 녹듯 사라졌다.
선발된 「예비모델」들은 잡지사가 요구하는 사진비명목의 49만5천원을 낸뒤 서울고교에서 수영복차림의 사진 몇 커트를 찍었다.
당초 계약에는 메이크업에서 워킹·승마·스키 등 모델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고 돼있었지만 거세게 항의하는 사람에 한해 회사옥상의 좁은 공터에서 건성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척하고 내쫓듯 보내버리는 것이 전부였다.
『잡지사의 자금난 때문에 광고도 할겸 대회를 개최했지만 뽑힌 「모델」들은 언젠가는 TV·CF에 출연시킬 겁니다.』
입건된 잡지사 회장 방씨는 시종 태연히 결코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가수·배우·모델·운동선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스타」들의 뒤안길에는 겉보기의 화려함 뿐 아니라 피나는 노력과 땀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건 피해자들은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싶어 이들을 바라보는 기자의 눈빛이 곱지만은 않았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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