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문단현황-삶 한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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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문인협회는 지난달 25∼29일 중국북경과 연변에서 제2회 해외문학심포지엄을 가졌다. 세계에 흩어져 모국어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동포문인들이 모여 문학을 통한 민족의 동질성을 모색키 위해 문협에서 실질적으로 주최한 대회였으나 중국과 미수교인 관계로 주최명의를「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에서 빌려쓸수 밖에 없었고 심포지엄 명칭도 「세계민족문학발전을 위한 국제학술회」로 정할수 밖에 없었다. 또 명의사용료로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에 문협이 예산에 없던 1천달러를 지불해야했다.
문협의 의도는 오로지 한민족을 대상으로 한 문학심포지엄을 열 생각이었으나 주최측은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로 하고 몇몇의 이민족문인을 참석시켜 국제학술회의로 모양을 꾸몄다. 이는 중국당국이 북한이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원래 이 심포지엄은 중국작가협회연변분회의 도움을 얻어 연변에서 열려했으나 진행을 맡기로 했던 연변분회 주석 이근전씨가 공교롭게도 행사와 때맞춰 내한해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연변지역이 중국의 대북한관계에 가장 민감한 지역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당초 계획과는 달리 북경에서 열리고 북한문인들도 불참, 한국문인 1백30여명, 중국동포를 포함한 교포문인 50여명, 그리고 중국내 회족등 소수민족문인 30여명이 참가했을 뿐이나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세계로 흩어져 살고있는 한민족의 문단현황과 다양한 삶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특히 7월25일 연길시 백산호텔에서 개최된 장르별 좌담회에서는 중국조선족문학의 전통과 현황을 소상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연변문인들 입에서 흘러나온 『연변에서는 남한의 추리소설이 많이 읽히고 있다. 그러나 난해한 모더니즘 소설은 전혀 읽히지 않는다』 『시단에는 몽롱주의(모더니즘)경향이 점차 팽배하고 있으나 소설쪽에서는 아직 사실주의 경향을 견지하고 있다』 『연변문단에서 수필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사회만 논하던 중국문단에서 인생을 논하고 또 가볍게 읽힐수 있는 수필에 대한 욕구도 날로 증대될것 같다』는 등의 말에서 중국의 개방화 정책과 함께 문단도 변하고 있음을 엿볼수 있었다. 즉 구세대·신세대, 리얼리즘·모더니즘으로 중국동포문단이 나뉘어져있고 나아가 연변지역과 그 이외지역, 심지어는 친화·친한으로 갈리는 낌새도 느끼게했다.
현재 중국내에는 주로 함경도에서 이주해온 동포가 연변등 길림성주변에 1백20만명, 경상도에서 이주해온 동포는 흑룡강성에 50만명, 평안도에서 이주해온 동포는 요령성에 30만명 정도가 각기 흩어져 살고 있다. 실제로 7월28일 북경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연변문인들은 눈에 거의 안띄었으며 북경·장춘·심양등 연변지역이외의 동포문인들만 눈에 띄어 중국동포문단이 2개로 크게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한편 북경 국제무역센터대회의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장춘에서 발행되는 격월간 문예지 『장백산』 편집부주편이며 시인인 남영전씨는「조선민족문학국제교류를 활발히 진행하여야할 문제에 관하여」란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문단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전세계에 펼쳐져 있는 우리민족문학 현황을 소상히 소개, 중국동포문단이 얼마나 민족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87년부터 남북한·캐나다·미국·일본등을 직접 방문, 정리한 남씨의 조선족문단현황에 따르면 중국에는 출판사 6개, 문예지 5개가 있고 연변분회회원 3백명, 중국작가협회회원 50명,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회원 2백여명등이 가입돼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는 5개문예지 문인 2백명, 일본에는 10개문예지 문인 1백여명, 캐나다에는 4개문예지 문인 40명, 브라질에는 『열대문화』라는 동인지 1권과 15명의 동포문인이 있다.
남씨는 교포문단현황및 그들이 발간한 작품집수및 문학의 특성까지도 상세히 밝혔다.
한편 심포지엄후 열린 민족시 낭송회에서는 한국 10명을 비롯해 중국 6명, 미국 2명, 소련 2명등 동포시인의 시낭송이 있었다.
『어이하여 어이하여 내 맘은 한강으로 흘러가느냐, 대동강으로 흘러가느냐. 아 속일 수 없는 것이, 끊을 수 없는 것이 핏줄이라더니….』한 중국동포문인이 낭송한 시에서 볼 수 있듯 이날 낭송된 시들은 대부분 감상시·순수시의 틀에만 머무르고 말았다. 동포들이 만나서 얼싸안고 흘리는 시적 눈물도 좋고, 한민족의 순수한 서정도 좋지만 사회주의권 동포시의 주류를 이루고, 또 한국에서도 큰 흐름을 이루고있는 리얼리즘 계통의 시낭송이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북경=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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