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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북핵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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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동아시아에는 기존의 상황을 뒤엎을 능력을 가진, 와일드 카드 역할을 할 나라가 없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교착상태는 장기화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만약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과 중국의 경제.군사적 확장에 위협을 느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스라엘과 일본은 비슷한 입장이다. 둘 다 민주국가이며 미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동맹이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어느 정도는 워싱턴에 의존해야 한다. 둘 다 역사적으로 악연인 이웃 국가를 두고 있다. 양국 정치인의 상당수는 호전적인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이웃 나라로 인해 핵그늘에서 살게 됐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도움을 받건 받지 않건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듯이, 일본 일각에서는 정부가 온전한 안보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947년 이후 일본의 평화헌법은 군사적 무장을 금지하고 자위대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과 중국의 경제.군사적 영향력 증가는 일본의 안보정책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워싱턴은 북한을 단념시키지 못하는 무능을 보이고 있다. 평양에 대해 실행 가능한 군사적 옵션이 없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다른 선택보다 교착상태를 더 선호한다.

미국 관리들은 6월 북한에 탄도미사일 실험을 용인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7월 초 미사일을 발사했다. 9월 미국 관리들은 북한의 지하 핵실험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10월 9일 지하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은 핵 보유국임을 증명한 뒤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회담이 타개책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일정한 예측 가능성은 제공한다. 북한 관리들은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혜택을 얻어내려 할 것이고, 미국은 계속해서 이라크와 이란에 집중할 수 있다.

한계선을 넘으려는 평양의 도발, 워싱턴의 무능, 중국이 동북아를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일본 유권자들이 일본의 평화주의적 안보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것을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98년 북한은 일본 영공에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제 핵무기 실험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일본은 김정일 정권이 어느 날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어 발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충분히 가질 만하다. 다시 한번 북한 미사일이 일본 본토를 향해 날아가는 경우 일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화헌법을 개헌하거나 국방전략을 바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일본 관리들이 미.일 미사일방어 계획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했다. 이 계획은 중국을 자극해 새로운 중.일 긴장관계를 조성할 것이다. 북한과의 대치국면과 중국에 대한 견제 속에서 핵 개발을 금기시하는 일본의 정책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일본=와일드 카드'시나리오도 바로 현실화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일본의 와일드 카드로서의 잠재적인 역할은 장기적 관점에서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아시아에는 국가 간 안보 문제를 사전 조율하고 분쟁을 중재할 수 있는 다자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언 브레머 국제정치 컨설팅회사 유라시아 그룹 대표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