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인 초호화판 피난/김상도 외신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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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방의 감격에 휩싸인 27일 쿠웨이트시. 자유를 외치며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일단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들에게도 가슴을 뭉클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느낌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시내에서 『쿠웨이트 자유』를 외치는 한 남자를 불러 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인이었다.
또다른 사람 하나는 파키스탄인이었다. 쿠웨이트인을 만나는데는 3,4명을 더 멈춰서게 해야만 했다.
해방된 쿠웨이트시에 쿠웨이트인들은 많지 않았다.
쿠웨이트인들은 걸프전 진행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머물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다란 등에서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한 쿠웨이트인들은 고급호텔에 머물면서 호텔로비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면서 「나라를 잃은 슬픔」이 그렇게 목이 메일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숙박비 1백달러가 넘는 호텔에 가족과 함께 머물면서 곧 승리할 것이 확실한 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가벼운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우디정부는 쿠웨이트 난민들을 위해 한국건설업체가 지어놓은 아파트단지를 무료로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전기·수도·가스 등을 일체 무상공급했다.
이 아파트에 피난하고 있는 쿠웨이트인 샤미르 알모데얀씨(38)는 어머니를 포함,부인·자녀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아파트는 방 5개에 화장실 3개,그리고 부엌 2개 등 50여평 크기였다.
쿠웨이트 망명정부는 피난 쿠웨이트인 1인당 1천2백리얄(24만원 정도)을 지급하고 있었다. 또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게는 3백리얄(6만원)을 지급했다.
알모데얀씨 가족은 피난보상금이 어른·어린이몫 모두 합쳐 월 4천8백리얄(96만원)의 수입이다.
쿠웨이트인들이 해외로 빠져나와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다국적군이라는 이름하에 미국등 세계각국이 군대를 파견,걸프전쟁이라는 대리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다국적군 참가국들은 무엇을 위해 국민들을 희생시키며 전쟁을 떠맡았는가.
해방의 날 쿠웨이트시 거리에서 미국 방송기자가 비디오촬영을 위해 나눠준 성조기를 흔들며 쿠웨이트 어린이들은 이렇게 외쳤다.
『생큐 아메리카.』
대리전쟁은 보답으로 감사의 말을 듣기위해서였을까.<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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