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창립 52주년 한국공인회계사회 서태식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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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한국은 61개 조사 대상 국가 중 38위를 차지했다. 특히 '회계와 감사 관행' 항목에서는 58위로 바닥을 헤맸다. 한국 회계에 대한 국제적 불신이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는 꼴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서태식(68.사진) 회장은 "세계 11위 경제 강국에 어울리지 않는 한국 회계의 부끄러운 현주소"라고 자평했다. 회계사회가 수년 내로 한국 회계의 국제적 신인도를 10위 안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톱10' 운동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11일 창립 52주년을 맞는다. 서울 충정로의 사무실에서 서 회장을 만나 한국 회계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들어봤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기업 회계 제도는 많은 개혁을 경험했다. 하지만 아직 불신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제도적 측면만 보면 우리는 세계에서도 매우 강력한 제도를 구축했다. 문제는 규제 위주로 제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런 규제가 회계에 대한 불신을 오히려 키우는 측면이 있다. 특히 과잉 규제가 문제다. 가령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사보고서 감리(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가 감사 기준에 적합한지를 금융감독원이 검토하는 것)는 작은 문제까지 짚어내 징계를 내렸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우리 회계에 문제가 많다는 인상을 줬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규제 강화가 능사가 아니고 합리적 규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회계사회가 '톱10'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신인도가 높아지긴 힘들 것 같은데.

"국제 기준에 맞는 회계 관련 제도만 갖춰지면 일단 30위까지는 쉽게 올라갈 것이다. 10위 내로 진입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회계사와 기업들의 노력이 관건이다."

-회계사들의 자정 노력도 필요할 것 같은데.

"공인회계사 윤리기준을 새로 제정하는 등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리기준으로만 미흡하다고 판단해 윤리신고센터도 설치하고, 윤리 실천을 위한 세부 지침도 마련해 놓았다."

-2010년부터 국제회계 기준이 의무적용된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회계제도와는 무엇이 다른가.

"중요한 차이는 세 가지다. 우선 연결재무제표를 주 재무제표로 한다는 점, 자산과 부채의 평가 방법을 '공정가치'(시장가치)로 한다는 점, 정책적 목적 등 외부 입김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거래의 실질에 따른 회계 처리를 한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자본시장이 통합되는 마당에 국제회계기준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틀이 됐다. 국제회계기준은 국제 공용어로 기업 가치를 설명하는 것에 비유된다. 가령 세계시장에 삼성전자의 가치를 설명하는데 한국어로 하면 어느 외국인이 알아듣겠는가. 국제회계기준 수용은 회계 투명성에 대한 신인도 제고에도 필수적이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이 2년간의 유예기간을 끝내고 내년부터 본격 적용된다(※금융감독 당국은 올해 말까지 기업이 과거 분식회계 사실을 자발적으로 수정할 경우 감리를 면제해 주거나 조치를 경감해 주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부담일 텐데.

"집단소송제는 소비자를 보호하고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 제도는 원산지인 미국에서조차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괴물'로 평가되고 있다. 소액주주가 증권 집단소송으로 손해배상을 받는다고 해도 기업 가치가 떨어져 오히려 손해라는 지적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돼 서비스업이 개방되면 업계에도 충격이 가지 않을까.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회계법인이 글로벌 회계법인들과 손잡고 있기 때문이다. 염려되는 것은 정작 회계시장 개방보다 법률시장 개방이다. 공인회계사를 전문적으로 노리는 미국의 이른바 '킬러 변호사'들이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나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같은 날 선 무기를 들고 우리 회계시장을 사냥터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서태식 회장=삼일회계법인을 설립한 한국 회계사업계의 산증인.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2년 계리사(공인회계사의 옛말) 시험에 합격했다. 71년 5명의 공인회계사를 이끌고 삼일회계법인을 설립, 현재 2900명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회계법인으로 키웠다.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있다. 세계 최대 회계법인 미국 PwC의 자문위원과 이사, 아시아·태평양 회계사연맹(CAPA) 의장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4년 6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올 6월 연임됐다.

글=김동섭 산업데스크, 이현상 기자<leehs@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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