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적자’ 5년반새 최대…한국 온 외국인들보다 해외 간 한국인 더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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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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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 여행수지가 분기 기준으로 5년 반 만에 가장 큰 적자 폭을 나타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내·외국인 관광객 수가 함께 늘고 있지만, 예전과 비교해 해외로 나간 내국인보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지갑이 상대적으로 덜 열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1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여행수지(잠정치)는 39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 유행 훨씬 전인 2018년 3분기(-41억7000만 달러) 이후 최대 적자 규모다. 여행수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수지도 23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1분기 경상수지 흑자가 168억4000만 달러이긴 하지만, 수출을 통한 상품수지 흑자를 여행 등 서비스수지 적자가 상당수 깎아 먹은 셈이다.

이는 엔데믹으로 외국인 입국자만큼 내국인 출국자가 빠르게 늘어난 영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해외로 나간 여행객 수는 742만명으로 2019년 1분기(786만명)의 94.4%까지 회복했다. 올 1분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40만명으로 5년 전의 88.6% 수준이었다.

특히 최근 내·외국인의 관광 소비 ‘온도 차’가 적자 폭을 키우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국인이 해외에서 쓴 금액인 여행지급은 올 1분기 74억4000만 달러로 2019년 1분기(80억2000만 달러)와 비교하면 7.2%만 줄었다. 출국자 수를 고려하면 외국 관광에 나선 한국인들이 예전과 비슷하게 돈을 쓴다는 의미다.

직장인 최모(38)씨는 지난 2월 설 연휴를 활용해 일본에 일주일 휴가를 다녀왔다.

일본 다녀온 직장인 “물가 싸 지갑 더 쉽게 열려”

엔저(円低)를 타고 오사카·교토 등에서 먹거리 여행에 집중했고, 돌아올 땐 술·라멘 같은 선물도 한가득 사 왔다. 그는 “체감 물가가 싸게 느껴지니 국내에서보다 지갑이 쉽게 열렸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이 외국인 관광객 등에게 벌어들인 여행수입은 올 1분기 35억4000만 달러로 5년 전(49억9000만 달러)보다 29% 감소했다. 한국 관광을 온 이들의 씀씀이가 코로나19 유행 전보다 뚜렷하게 줄어든 걸 보여준다. 이는 단체 여행으로 대표되는 중국 ‘유커’(遊客)가 이탈하고, 외국 관광객의 전반적인 여행 트렌드도 K콘텐트나 캠핑, 식도락 같은 체험 중심으로 변화한 여파로 분석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인이 한국 관광 선택 시 ‘쇼핑’을 고려한다는 비중은 2019년 72.5%에서 지난해 49.5%로 급감했다. 또한 방한 중국 관광객이 참여하는 활동에서 쇼핑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95.1%에서 68.2%로 떨어졌다. 국내 면세업계는 여행객이 늘어난 올 1분기에도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저조한 성적표를 이어갔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개별 여행에 나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기존의 장소·쇼핑 위주 여행이 체험 중심으로 바뀌었다. 중국 관광객도 이전보다 한국 여행 경험이 늘면서 친척→가족→본인 등으로 쇼핑 대상이 점차 축소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여행수지를 개선하려면 외국인 관광객 수 확대·체류 기간 연장 등을 함께 이끄는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훈 교수는 “서울에만 집중된 외국인 관광을 부산·광주·경주 등 새로운 지방 권역으로 유도하면서 여행객 지출과 체류일을 늘려야 한다”면서 “국내 관광지의 ‘바가지’ 인식 등도 개선해야 해외로 나간 내국인 수요까지 끌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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