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말바위는 말 안 닮았다…차마 못 부르는 ‘민망한 본명’

  • 카드 발행 일시2024.04.09

서울 북악산(342m)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산행객으로 북적이는 명소다. 2년 전 완전히 개방돼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고, 백악마루 정상에 서면 ‘천만 도시’ 서울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서다.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동쪽(삼청동 방면)과 서쪽(부암동 방면)에서 오를 수 있으며, 남쪽인 청와대 춘추관 위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또 성곽길은 인왕산, 낙산으로 이어져 순성(巡城, 성을 따라 돌기) 하기에도 좋다. 서울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기도 하다.

북악산은 단순한 명소 이상이다. 500년 조선의 도읍, 경복궁의 진산(鎭山)으로서 그간 얽힌 수많은 설(說)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그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이성계(1335~1408), 정도전(1342~1398), 무학대사(1327~1405) 등이 등장하는 북악산 풍수지리(風水地理) 설이다. 풍수는 본래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로 “물을 얻는 것이 으뜸이고 바람을 갈무리하는 것이 그다음(중국의 풍수 고전 『금낭경』 중)”이라는 뜻이다. 크게 음택풍수(묏자리), 양택풍수(집터)로 나뉜다.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조선의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전국의 길지와 명당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일찍이 고려 시대 이궁(離宮, 별궁)으로 남경(南京)이 자리했던 경복궁 일대도 그중 하나로 손꼽혔다.

무학대사와 정도전은 인왕산(339m)을 주산으로 할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할지를 놓고 각자의 식견을 펼쳤다. 무학대사는 북악과 남산(270m)이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가 되는 인왕산(339m)을 주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산의 기세나 정기로 봐 인왕산 아래 도읍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경우, 궁궐은 동쪽을 바라보게 된다. 반면 정도전은 “예로부터 제왕은 남쪽을 보고 천하를 다스렸고 동향(東向)했다는 말은 없다”며 했다. 결국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낙산(125m)과 인왕산을 좌청룡·우백호로 삼아 경복궁을 도읍 터로 정한다.

북악산 한양도성 성곽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지세를 설명하고 있는 김두규 우석대 교수. 김영주 기자

북악산 한양도성 성곽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지세를 설명하고 있는 김두규 우석대 교수. 김영주 기자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과 맞닿은 청와대 자리도 풍수지리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터가 좋지 않다는 주장은 최근까지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관저의 풍수상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점이 불길하냐’는 질문엔 정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한국 자생풍수의 대가로 치는 고 최창조 선생도 청와대 터가 좋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경복궁의 뒷문 신무문 위쪽은 죽은 자들의 땅이며 이쪽에 일본이 총독 관저를 지은 후 역대 조선 총독들은 전원 옥살이를 했다. 암살당한 사람도 있다. 한국 대통령들의 말기와도 닮았다”고 했다.

개방 1주년 특별음악회 위한 무대 설치된 청와대. 연합뉴스

개방 1주년 특별음악회 위한 무대 설치된 청와대. 연합뉴스

2년 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청와대에 들지 않고 용산에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74년간 이어져 온 대통령 집무실 기능을 마감한 것이다. 대신 연일 여행객과 산행객으로 북적대는 관광지가 됐다. 600년 전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한 이래, 요즘처럼 보통 사람들이 북악산 자락을 마음대로 드나들던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한반도 남쪽의 어느 산도 이런 풍부한 서사를 간직한 곳은 드물다. 그래서 북악산을 오르는 일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조선 제일의 명당을 찾던 권력자와 풍수지리 사상가의 안목과 식견을 두루 살펴보는 시간이 된다.

4월 7일 북악산 말바위에 걸터앉은 풍수학인 김두규 우석대 교수. 김영주 기자

4월 7일 북악산 말바위에 걸터앉은 풍수학인 김두규 우석대 교수. 김영주 기자

지난 5일, ‘풍수학인(風水學人)’으로 손꼽히는 김두규(65)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와 함께 북악산을 올랐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독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2000년 갑자기 풍수지리로 전공을 바꿨다.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최창조 교수를 의형(義兄)으로 삼아 교우했다”고 한다. 『내 운을 살려주는 풍수 여행』, 『논두렁 밭두렁에도 명당이 있다』 등 최창조 교수가 주장한 ‘자생풍수’와 궤를 같이하는 책을 여러 권 썼다.

양지바른 말바위의 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