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엘베 낀 채 올라갔다, ‘걷기 덕후’ 된 남자의 사연

  • 카드 발행 일시2024.04.02

이강석(61) 특허영어연구원 원장은 끊임없이 걷는 사람이다. 겉으로 보기엔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중년의 사내다. 체력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걷기가 ‘오타쿠’(마니아 이상으로 한 분야에 심취한 사람) 수준이다. 그의 걷기는 세상만사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한다. 어딜 가든지 행선지에 이르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주변을 뒤진다. 차도 없다. 이도 ‘걷기 오타쿠’가 되는 데 도움이 됐다. 길을 떠나기 전 2만5000분의 1 지도에서 본 곳은 거의 두발로 찾아다닌다.

3월 27일, 이강석 씨가 강원 삼척 오분해변에서 해돋이를 보고 있다. 오분해변은 고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다. 김영주 기자

3월 27일, 이강석 씨가 강원 삼척 오분해변에서 해돋이를 보고 있다. 오분해변은 고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다. 김영주 기자

이를테면 동해안 일출을 보러 경북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을 갔다 치자. 바다에서 일출을 보고 난 후 해안선을 따라 마냥 걷는다. 트레일이 있든 없든 상관 없다. 남이냐, 북이냐 방향만 정할 뿐이다. 바닷가 험한 바윗길도 웬만해선 넘어간다. 걷다가 산이 나타나면 방향을 산으로 잡는다. 특히 남들 블로그에 올라오지 않은 산이라면 꼭 들른다. 산에서 내려오면 마을 인근 유적지를 찾아다닌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향교와 작은 도서관 등은 그만의 필수가 됐다. 저수지가 있으면 여기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밥을 먹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는 “한번 걷기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거르기 일쑤다. 며칠간 물만 마시고 걸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에게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는지, 몇 ㎞를 걸었는지 세는 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1년부터 3년간 국내 장거리 걷기 길의 대명사 격인 해파랑길(750㎞)·남파랑길(1470㎞)·서해랑길(1800㎞)을 모두 걸었다. 그 전에 2007년부터 13년여간 전국의 저수지 수천여 곳을 찾아다녔고, 2013년부턴 7년 동안은 전국 도서관 1000여 군데를 답사했다. 또 2년 전엔 전국의 일출명소 100곳을 선정한 뒤 답사를 하고 기록했다. 해돋이 사진을 얻기 위해 한 장소를 수차례 찾아간 곳도 수두룩하다.

이 원장과 함께 지난달 27일 강원도 삼척시 오분해변을 찾았다. 그가 전국 해돋이 명소 중 영덕 고래불해수욕장과 함께 첫손가락에 꼽는 곳이다. 오분은 유명한 삼척 맹방해변 북쪽에 있다. 맹방이 광활한 백사장과 으르렁대는 파도 소리 덕에 유명한 해수욕장이라면 오분은 작고 호젓하다. 그래서 유명하지 않은 곳이다. 길어봐야 백사장 길이가 100m 남짓. 해변 남쪽과 북쪽에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곶이 백사장을 포근히 안고 있는 형상이다. 오분 해변 위로 동해를 바라보는 고성산(99m)이 있다. 일대는 신라 장군 이사부(출생연도 미상, 6세기 전후 추정)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진한 곳이며, 일제 강점기엔 탄약창이 있었던 군사 요충지였다. 이렇듯 인적 드문 풍광과 숨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 그가 주로 가는 행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