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족발 뼈까지 줍고 다녔다…‘박찬욱 뮤즈’ 개 100마리 사연

  • 카드 발행 일시2024.04.05

적응되는 이별이란 없다

“많이 보내봤으니 이제 안 힘들지 않으세요?”

반려견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괴롭다고 전화하며 묻는다. 그렇지 않다. 쌓여 있는 슬픔에 또 하나 얹혀질 뿐.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는 미안해서다. 잘해주다 보냈으면 덜 미안할 텐데, 하도 여러 마리 키우니 어쩌다 쓰다듬어주는 게 고작이다. 아이들은 늘 날 쳐다보는데, 나는 늘 쳐다봐주지 못한다.

몇 달 전에도 한 마리가 갔다. 간식 캔은 비싸 약 먹일 때만 준다. 다른 개가 아파 캔을 뜯어 약을 버무렸더니 한입 달라고 달려들더라. “너 저리 안 가!” 한 숟가락 퍼서 먹일걸…. 한 번이라도 속 시원하게 못 준 게 한이다.

환갑이 넘으면서 몸에 힘이 달려 인간관계를 끊었다. 떠난 아이 중에 초대형 견종인 그레이트데인이 한 마리 있었다. 덩치가 황소만 해서 매달리면 나보다도 컸는데 나이가 드니 그 까맣던 털이 다 하얘졌다. 매일 나가 뛰놀던 애가 떠나기 전 2~3년은 누워만 있었다.

개들은 죽을 때가 다가오면 밥을 안 먹는다. ‘황소’도 곡기를 끊었는데, 표정이 불행하거나 슬픈 게 아니라 편안해 보였다. ‘자, 이제 준비하고 가야지’ 하는 것처럼…. 그런 데서 죽음을 배운다.

진돗개 이름은 황제였다. 14살쯤 돼 떠나던 날은 볕이 좋았다. 큰 대야에 물을 받고, 거품을 내 황제를 담그고 마사지해줬다. 너무 행복해하며 갔다. ‘그래 죽음은 이렇게 받아들여야겠구나.’

어쩌면 떠난 아이들을 오래 붙들고 있는 것도 인간의 욕심일지 모르겠다. 개들은 친하던 친구가 가면 딱 며칠 좀 멍해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편의에 따라 고통을 길게 갖고 가는 건 아닐까?

배우 이용녀는 경기도 포천에서 강아지 100마리, 고양이 13마리와 산다. 모두 버려진 반려동물이다. 김성룡 기자

배우 이용녀는 경기도 포천에서 강아지 100마리, 고양이 13마리와 산다. 모두 버려진 반려동물이다. 김성룡 기자

'나의 반려일지' 4화 목차

영화감독 박찬욱이 “극단적인 것들이 다 가능한 배우”로 꼽은 이용녀는 홀로 유기견 100마리를 키웁니다. 1975년 연극으로 데뷔해 최주봉∙윤문식과 활동했고, 박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아는 ‘신 스틸러’가 됐습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도 출연한 그의 경기도 포천 깡촌 스토리를 전합니다.

Part1. 1700마리 입양 보낸 ‘박찬욱의 뮤즈’
Part2. 족발 뼈 줍고 휴지 훔쳐 버틴 20년 
part3. 치매 걸린 엄마도 개가 살렸다
Part4. ‘학대 멈추라’ 3년간 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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