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별 뒤 “개 한 마리 사줘”…89세 엄마는 소녀가 됐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3.29

1. 해피가 문제야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다. 그곳은 대낮이지만, 내가 사는 한국은 아직 어두운 이른 시각. 십중팔구 무척 좋은 일 아니면 매우 나쁜 일일 확률이 높다. 카톡 창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한국에 사는 나를 배려해 좋은 일은 편한 시간에 알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유였으나 10년 전 아버지 부음을 카톡으로 들었을 때와 비슷한 시각이란 점이 불길하게 나를 몰아세웠다. 스무 개 넘는 메시지를 읽었다. 89세인 엄마가 폐렴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며칠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도 비켜 갔던 엄마에게 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가 몸이 좀 으스스하다는 얘기를 인사처럼 남기고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가끔 있는 일이고, 나는 따뜻한 하와이 날씨 믿지 말고 침대 히터 꼭 켜고 주무시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었다.

‘퇴원하면 괜찮을 거야? 내가 갈까? 비행기 표 알아볼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갑자기 떠나려니 뭐 먼저 처리하고 가야 할지 난감했다. 형제들은 오래 머물 수 있는 때 오라며 말렸다.

‘해피가 문제야’

막내가 뜬금없는 메시지를 남겼고, ‘읽음’ 표시가 빠르게 지워졌다.

‘어제 날이 이상하게 쌀쌀하더라고. 엄마가 해피 산책시키느라 무리했지 뭐. 그 녀석이 보통 고집이어야지.’

결국 걱정했던 일이 터졌다. 단톡방 대화가 물꼬를 튼 것처럼 이어졌다. 결론은 엄마 혼자 덩치 큰 해피를 키우기 벅차다는 거였다.

‘그럼 어떻게 해? 우리가 곁에 없는 건 견뎌도 해피 없으면 하루도 못 견디실 텐데….’

막내의 메시지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단톡방이 잠시 조용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오랜 병시중에서 벗어났으나 밀려오는 공허함을 견디지 못했다. 아버지가 계시던 양로원을 출퇴근하다시피 하던 엄마는 남아도는 시간 앞에 무기력해졌다. 새벽에 혼자 성당까지 걸어 매일 미사에 참여하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한국에 오시라는 내 말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심지어 그렇게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시청도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나이 50에 이민을 결정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할 때부터 사태는 심각해졌다. 가까이 있는 자식도, 멀리 있는 자식도 모두 서운하다고 했다.

임재희 작가의 어머니 현주령씨가 하와이 이올라니궁전 부근에서 반려견과 산책하고 있다. 사진 임재희 작가

임재희 작가의 어머니 현주령씨가 하와이 이올라니궁전 부근에서 반려견과 산책하고 있다. 사진 임재희 작가

‘나의 반려일지’ 3회 목차

임재희 작가가 미국 하와이에서 남편과 사별 후 홀로 남은 어머니의 사연을 전합니다.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리던 엄마가 우여곡절 끝에 반려견 토리를 만나는데…

1. 해피가 문제야
2. ‘봉양도 싫다’는 엄마가 내린 처방
3. 두 번의 이별, 그리고 만남
4. 소녀로 돌아간 89세 울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