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탈당은 생존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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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8일 "만일 당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 노태우(左).김영삼(YS.(中)).김대중(DJ.(右))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집권당과 결별한 걸 가리킨 것이다. 1987년 '5년 단임 대통령제' 도입 이후 현직 대통령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 길을 걸었다. 모두 자신의 손으로 만든 당과 결별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당적 이탈 얘기는 전임 대통령들과 다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과거 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집권당 대선 후보가 인기 없는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차원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실제 92년 노 전 대통령과 YS, 95년 YS와 이회창 후보, 그리고 2002년 DJ와 노무현 당시 후보는 미묘한 갈등을 겪었다.

집권당 대선 후보에겐 늘 "대통령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야당은 야당대로 대통령이 중립적으로 선거 관리를 할지 의심했다. 수시로 "하야하라"는 으름장도 놓았다. 이도저도 못 하는 상황에서 '식물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탈당'이었다. '공정한 대선 관리'나 '초당적 국정 운영'을 명분으로 내건 생존술이었다. 동시에 야당 후보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보험용'이기도 했다.

첫 번째 탈당은 92년 9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민자당을 떠난 것이다. 민자당은 노 전 대통령이 90년 YS.JP(김종필 전 총리)와 3당 합당을 해 만든 당이다. 당시 YS가 '내각제 밀약'을 깨고 차기 대선 후보로 지목해 달라고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었다. "결별하는 게 선거 치르기 좋다"는 계산을 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적 이탈 후 현승종 선거 중립 내각을 구성했다. 그러곤 야당 후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청와대 회동을 했다.

YS도 유사한 말로를 겪었다. 97년 11월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탈당 나흘 전까지만 해도 겉으론 "탈당은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측근들에게 "빨리 대통령을 관두고 싶다"고 토로했다. 아들 현철씨의 구속 사태에다 청와대의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지원설이 맞물리면서 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검찰이 야당 후보였던 DJ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한 것도 계기가 됐다. 당시 여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씨는 YS를 의심했다.

DJ도 대선을 7개월 앞둔 2002년 5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최측근인 민주당 권노갑 고문이 구속된 지 사흘 만이었다. 세 아들 비리 연루 의혹으로 민심 이반이 심할 때였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불렸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위한 위장 탈당"이라고 반발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한 차례 탈당한 전력이 있다. 집권 7개월 때인 2003년 9월 민주당적을 버렸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탄핵 직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선 열린우리당을 과반 여당(299석 중 152석)으로 만들어냈다. 일종의 성공한 승부수였던 셈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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